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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Nov 19. 2024

하늘이 할 일은... 하늘이 알아서 한다



지붕에 서리가 하얗다. 겨울이다. 가을이 가기 싫어도 다가오는 겨울을 이겨낼 수가 없다. 아침 8시가 되어도 어둠을 벗지 못하고 4시가 되면 해가 지고 어두워진다. 낮이 짧아서 지붕에 앉은 서리가 녹지 않고 밤을 맞는다. 캘거리에 사는 큰아들이 아침에 눈 내린 숲 속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천지가 하얀 옷을 입고 차분히 앉아 있다. 불과 3시간 떨어진 이곳에는 다행히 눈도 내리지 않고 화창하다. 어제 하루종일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많이 꼈었는데 눈은 안 내린다. 겨울에 당연히 눈이 와야 하는 줄 알지만 눈이 오는 것이 싫다. 낙엽은 여기저기 뒹굴어 다니며 군데군데 쌓여있다. 단풍 든 나무들이 예쁘다 했는데 이파리들을 다 털어놓고 가 버린 거리는 휑하고 지저분하여 눈이라도 와서 덮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새싹을 보며 봄이 온다고 좋아했는데 어느새 겨울이 되어 눈이 오는 것을 보니 세월처럼 빠르게 없는 것 같다. 지난해 겨울에는 눈이 별로 오지 않고 날씨가 따뜻해서 연말에 아이들이 오고 가는데 걱정을 덜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도 눈이 오지 않고 춥지도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이들은 추워도 잘 버티는데 추운 게 무서워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추운 것뿐이 아니다. 더위도 못 견디고 바람 부는 것도 싫어진다. 나이가 들면 참을성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고 오랫동안 누워있기도 힘들다. 밤에 잠이 쏟아지면 잠시도 못 참아 자야 하고, 자다 말고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고,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며 잤는데 모든 게 달라졌다. 집안 청소를 하려고 조금 움직이면 허리가 아프고, 무엇이든지 후다닥 하던 성격은 어디로 갔는지 한꺼번에 안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노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젊어서 해야 힘든 줄 모르는데 이제는 노는 것도 힘들고, 할 일은 많은데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해도 일 년이면 꽤 많은 알을 할 수 있다. 욕심내지 말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말처럼 천천히 하면 된다. 집안을 둘러보면 아이들이 남겨놓은 살림이 아직도 여기저기 있다. 쓰지도 않고 필요도 없지만 버리자니 나중에 찾을까 봐 그냥 놓아둔 짐들이다. 가져가라고 하면 엄마 것부터 버리라고 한다. 버리지 않으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물건마다 아이들의 이름을 써 놓으면 나중에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는 살림이 얼마 없어 공간이 많아서 한 개 두 개 사다 놓은 물건으로 집안이 꽉 차있는 것을 보며 언제 이 많은 물건을 사다 놓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편하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왠지 아무것도 없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며 그동안 쓰던 물건들을 트럭으로 버리는 것을 보며 덩달아 나도 버릴 때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바빠진다. 모을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고. 쌓을 때가 있고 허물을 때가 있는 것이다. 좋아서 산 물건이니 쓸 때까지 쓰다가 버리면 되는 것이니 큰 걱정은 안 한다. 사람도 만날 때가 있고 헤어질 때가 있는데 하물며 하찮은 물건이니 때가 되면 버리면 된다. 먹고, 입고, 자고, 할 장소만 있으면 되는데 무슨 물건들이 그리도 많이 필요하다고 집안 곳곳에 쌓아놓고 쟁여놓았는지 모르지만 그게 인생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으고 버리고, 쌓고 하물며, 다시 세워나가는 것이다. 나무들도 새싹이 하나둘 피어 녹음을 만들다가 때가 되면 모두 털어버리는 것과 같다. 세월이 가고 젊은이는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세대교체가 된다. 나이가 들면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명예도 권력도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는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이 명언인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쓰고,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추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관객과 배우가 잘 어우러져 있을 때 영화나 연극이 빛이 나는 것처럼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어진다. 나이가 들어도 사회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봉사는 순수한 가치가 없다. 여전히 하늘은 맑고 푸르다. 서쪽으로 다 말고 아침 늦게 까지 떠있던 보름달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어차피 겨울이기에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눈이 오지 않기를,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하늘이 하는 일은 하늘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면 된다. 추우니까 겨울이고,  겨울이니까 눈도 오는 것이다. 세상사 돌아가는 대로 따라가야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마음에 드는 것 하나도 없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세월은 오고 가고, 우리네 인생도 오고 간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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