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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챨리 Dec 14. 2020

부르고뉴에서 찾은 그녀의 인생

샤또 그리예 총책임자, 추재옥의 무모한 도전


첫눈이 왔다. 매년 보는 눈이지만 그래도 첫눈은 설렌다. 예전의 좋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랠 겸 저녁 식사 시간에 와인 1병을 오픈하였다. 얼마 전 와인샵 카비스트에서 추천을 받아 구입한 와인이다.


와인 메이커도 처음 보는 이름이고, 라벨도 여느 부르고뉴 와인과 달리 색다르다. 마시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이 와인에 숨어 있었다.    



Maison des Joncs Hautes Cotes de Nuits 2018 (메종 데 종 오뜨 꼬뜨 드 뉘)

 


이 와인은 놀랍게도 한국인 여성, 추재옥이 만든 와인이었다. 추재옥, 그녀는 와인 수입사인 신동와인에서 일을 했다. 바쁘고 힘든 마케팅 업무 속에서도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프랑스 그것도 부르고뉴에 가서 제대로 와인을 배워 보고 싶다는 꿈.


마침내 그녀는 2008년 프랑스로 떠났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적수공권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오직 가슴속 깊이 새긴 꿈만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그리고 유학생활의 시작부터 어려움이 찾아왔다.


2년 과정의 양조 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입학을 위해서는 실제 와이너리에서의 수습생 경력이 필요했다. 100여 곳의 와이너리에 문을 두드렸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시작도 못해보고 끝인가’ 포기하기 일보 직전, 지원서 마감 2주를 남겨 두고 도멘 듀제니(Domaine d’Eugenie)라는 곳에서 기적적으로 그녀를 받아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어렵게 양조 학교를 수료하였다. 그 후 몇 년을 더 투자하여 양조학 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받아주었던 도멘 듀제니에서 양조 일을 시작하였다. 2017년에는 네고시앙(Negociant)으로 직접 포도를 사들여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와인에 메종 데 종(Maison des Jonc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시작이지만, 그녀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와인메이커 추재옥



2017년에 두 종류의 와인을 2 배럴 정도 소량 만들었고, 2018년에도 네 종류의 와인을 역시 소량 만들었다. 처음 만든 와인 치고는 주변의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이때 그녀에게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길을 가다 보면 길이 당신을 끌어당긴다.


그동안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도멘 듀제니 관계자의 추천으로, 전통의 와이너리인 샤또 그리예(Chateau Grillet)의 총책임자 자리를 제안받은 것이다. 샤또 그리예는 북부 론에 위치하고 있고 비오니에 품종으로 최고 수준의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와인의 가격도 높아서 현지 가격으로 최근 빈티지 와인들이 300~400 달러 정도이다.


그녀는 자신만의 와인을 양조하는 것도 좋았지만, 이런 명문 와이너리를 책임지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메종 데 종은 잠시 접어 두고, 지금은 샤또 그리예에서 또 다른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 내가 마신 2018년 빈티지가 당분간은 메종 데 종의 마지막 빈티지가 될 것이다. 와인을 잔에 따르니 우선 투명하고 선명한 체리빛 색이 눈에 들어온다. 장미와 같은 붉은 꽃 향과 함께 기분 좋은 향수의 터치도 느껴진다.






한 모금 마셔 보니 첫인상은 ‘여성스럽다’는 것이다. 여성이 만들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하늘하늘하고 섬세한 부르고뉴의 매력이 잘 녹아 있다. 마치 샹볼 뮈지니의 여성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섬세함 내면에는 강건한 탄닌과 탄탄한 구조감도 느껴진다. 장기 숙성의 포텐셜도 충분해 보인다. 오크 터치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신선하면서 jammy 하고  맛있다. 한국인이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맛있다. 그래서 더 끌린다.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무런 보장도 없는 외국에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그녀. 무엇이 그녀에게 그런 용기와 확신을 주었을까? 평탄한 길 만을 걸어왔던 나는 그녀의 용기와 열정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지금 더 큰 꿈을 위해 달려가는 그녀를 응원한다. 앞으로 그녀가 만들어 낼 멋진 와인들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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