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있는가?라는 즐거운 토론 주제에 내가 항상 Yes라고 답하며, 제시하는 근거가 있다. 우리의 가시광선은 잠자리보다 좁고, 청력과 후각 또한 다른 야생동물보다 낮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도 ‘오'감밖에 없는데 과연 어떤 미지의 감각이 있을 줄 알고, 없다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컨택트>의 관한 여러 평론들을 읽으며 '인간은 다채로운 색깔로 표현했으면서 외계 생물체 ‘햅터포드’는 무채색으로 표현했나'란 비평을 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앞서 말한 의문이 든다. 햅터포드가 과연 인간이 볼 수 있는 색깔이었을까?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채로 햅터포드를 구상했다면 우리는 더욱더 좁은 시각에 갇혀버렸을 것이다. 햅터포드의 거처지였던 ‘셴’, 그리고 햅터포드의 언어와 형체를 무채색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좋은 평을 주고 싶다.
12개의 나라가 외계 물체 셴을 두고 공평한 연구조사를 실행한다. (아쉽게도 드니 빌뇌브의 관심사엔 한국이 포함돼있지 않다.) 처음엔 두려움에 사로잡혀 각 국가의 정보를 공유한다. 낯선 것에 힘을 합쳐 해결하지만 결국 피폐해지고 만다. 아는 것이 조금씩 생기자 인간은 정보의 공유보단 국가 간 서열 확립에 기싸움을 펼친다. 이례적인 일도 잠시,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인간적 고증에 갇혀버린다. 연구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결국 서로를 불신하고, 햅터포드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먹다, 걷다’보단 그들의 출현 이유와 강압적인 질문을 하길 원한다. 낯선 것을 바로 잡고 싶어 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건 기득권 인간에겐 어쩔 수 없는 이치다. 반박하는 루이즈에게 대령은 ‘인간은 원래 이랬다’는 편견 가득한 말까지 내뱉는다. 루이즈가 영화 속에서 가장 깨어있는 인물로 나오지만, 결국 루이즈도 ‘why’를 멈추지 않는다. 감독 드니 빌뇌브가 영화 <컨택트>에서 선택한 인간상이다.
시간의 얽매이지 않는 햅터포드는 이러한 과거의 갇혀 미래를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커다란 혁명을 일으킨다. 지구를 정복한 인간에게 미지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인간 중심적 사상에서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살아온(살아왔다고 정의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햅터포드는 위협적인 ‘무기’ 일뿐이다. 영화는 이러한 인간 중심적 면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조금 ‘덜’ 인간 중심적인 루이즈를 통해서다.
개인적으로 시간의 뒤틀림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 사건이나 태초의 흐름 같은 분석을 좋아하는 탓에 다른 사람들이 ‘시간’, ‘언어’, ‘우주’ 등 인간의 지식으로 한계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풀어내려 하는가에 흥미를 느낀다. <컨택트>는 이 모든 것을 다 다루고 있다. 무엇 하나 외면하려 하지 않고, 설명하려 애썼다. 시간을 역행하는 것에 대한 ‘나비 효과’에 관해서 항상 정답을 찾길 바랐었는데 <컨택트>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정된 세계관에서 전혀 다른 세계관과 언어를 새로이 창조한 드니 빌뇌브에게 경이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