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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as Feb 15. 2023

유전자 조작 생물 옹호론


    대부분 사람에게 “유전자 조작 생물(GMO)”이라는 단어는 결코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유전자 조작 생물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은 실험을 통해 기형화된 생명체를 떠올리고 그런 것을 만드는 기업은 무지한 소비자를 속여서 파는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유기농”, “친환경” 작물에 대한 평판은 매우 높다. 장을 볼 때 많은 식료품이 유기농 식품임을 프리미엄 요소로 삼고 있으며 음식점에서도 좋은 식자재를 사용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홍보한다. 이만큼 “인공물”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자연물”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는 것이 현대 사회의 인식 속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사상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고 그 근거를 묻는 사람은 괴짜 취급을 받거나 무시당한다.

    설령 유전자 조작 생물이 몸에 나쁘다고 믿지 않는 사람도 유전자 조작 생물 재배를 허용하면 대기업에 의해서 기존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유전자 조작 생물을 허용하면 기업이 종자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작물을 만들어 처음에는 값싼 가격에 판매하다가 기존 작물이 사라졌을 때 폭리를 취하여 결국에는 소비자는 선택지를 빼앗기고 높은 가격에 작물을 구매해야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미 만연한 유전자 조작 생물을 예시로 삼아 위의 주장을 검토할 수 있다. 해당 사례는 밀이다.

현대 육배체(6N) 밀의 발생 과정

    현대의 밀(Triticum aestivum)은 육배체(hexaploid, 6N) 생물로 고대 농민에 의한 재배의 과정 중 3개 종의 유전자가 혼합된 작물이다. 다배체화는 동물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식물에서는 비교적 흔하게 일어난다. 물론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고대 농민이 의도적으로 배양한 것은 아니고 재배의 과정 중 다배체 개체가 더 큰 씨앗 가졌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T. aestivum은 다른 밀을 대체하였고 지난 수천 년간 밀 재배를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인류는 유전자 조작 생물로 인한 기형화를 겪지도 않았으며 다른 밀 품종 또한 멸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기호식품에 사용된다.

세포 분열 모형

    유전자 조작 생물에 대한 모든 비판과 공포는 유전자 조작이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현상이라는 잘못된 가정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유전자를 대규모로 수정하고 혼합하는 것은 자연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며 그 자체로써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성생식 중 감수분열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감수분열이 일어날 때 각 부모는 조 부모의 유전자를 무작위(엄밀히는 완전한 무작위가 아니고 염색체를 교차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로 섞어 생식세포(정자 또는 난자)에 유전자의 절반을 배분한다. 이때, 각 생식세포는 다른 유전자 배분을 가지게 되며 각 세포의 유전자는 모두 이 세상에 한번조차 존재한 적 없었던 조합이다. 해당 유전자 조작은 그 누구도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으며 그 어떠한 인허가(認許可) 절차를 거친 적도 없다. 실제로 이렇게 생성된 세포는 성체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며 성체가 되더라도 기형이 발생하는 경우 또한 흔하다. 만약 기업에서 이러한 유전자 조작 과정을 개발했다면 비윤리적 행위로 사회적으로 규탄받고 위법행위로 치부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지고 태어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 조작 생물이다.


    주변에서 다양한 음식에 대해 “몸에 좋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특히 우리 조상 대대로 먹었다는 “전통음식”과 자연에서의 가공을 최소화한 “천연식품”이 몸에 좋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이다. 반대로 “인공조미료”를 사용하는 것은 이기적인 음식업체에서 재료로 맛을 낼 경쟁력이 없어 “몸에 안 좋은” 물질을 음식에 넣는 저속한 행위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파헤치면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포식당하지 않기 위해 식물은 몸속에 독을 품고 겉에 껍질을 두른다.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식물과 같이 독을 지니기도 한다. 현시대 농작물은 자연에서의 방어기제를 약화하고 포식하기 쉽도록 선택적 교배를 수세대 동안 거쳐 만들어졌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기업은 자사의 상품에서 독성 물질을 제거할 유인책이 강하게 작동한다. 가공되지 않은 천연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음식점 간판에 종종 보이는 돼지고기를 요리하는 요리사 돼지만큼이나 왜곡된 인간의 망상일 뿐이다. 반대로 기피의 대상인 MSG는 Mono Sodium Glutamate의 약자로 소금의 구성 성분인 나트륨 이온과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뿐이다.

좌: 돼지고기를 요리하는 요리사 돼지. 우: 싹이 난 감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전통도 한때는 새로운 것이었고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금지되었다면 전통이 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구황작물로 알려진 감자와 고구마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래한 작물로 한때는 이방의 기괴한 작물이었다. 한국 전통음식의 표본인 김치조차 마찬가지로 남아메리카에서 유래한 고추를 섞은 한낱 퓨전 음식으로 시작했다. 만약 그때 감자의 독을 이유로 서양의 작물은 조선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금지되었다면 지금의 전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처음 감자가 소개되었을 때 지하에서 자란다는 이유 등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랍스터 또한 과거에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현대인의 유전자 조작 생물에 대한 공포가 유럽인의 감자에 대한 초기 공포와 얼마나 다른지 고찰이 필요하다. 대개 타인의 무지함을 비웃는 것이 자신의 무지함을 찾는 것보다 쉬운 법이다.

    유전자 조작 생물 금지에 대한 독점 논리는 생물학적 논리보다도 모순이 뚜렷하다. 설령 새로운 유전자 조작 생물을 만들어 재배하는 품종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더라도 민간 기업에서 기존 작물을 멸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만약 이윤이 발생한다면 경쟁사가 발생하여 다른 유전자 조작 품종을 개발할 것이다. 만약 한 기업에서 폭리를 취하려고 시도한다면 소비자는 다른 기업에서 기존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오히려 여러 기업의 경쟁으로 인해 기존의 품종보다 우수한 새로운 품종이 빠르게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시장 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이다.


    일부 독자는 유전자 조작이 그 자체로 해롭지 않다고 동의하면서도 유전자 조작 생물에 대한 공포와 불신에 적극적으로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무관심으로 인해 유전자 조작 생물의 잠재력은 싹틔울 기회가 실현되지 못한 채 짓밟혔다. 유전자 조작 생물을 활용한다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성이 높은 작물과 생태계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친환경 작물을 생산하는 것도 가능했을 터이다. 특히 개발도상국과 환경이 취약한 국가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에 기반한 규제로 인해 그 가능성은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역사를 스쳐 지나갔다.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기 때문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혜택은 지금 존재하는 문제점보다 설득력이 없다. 또한, 규제를 만드는 기관은 문제가 발생하면 규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지만  새로운 것이 성공하더라도 혜택은 기업과 소비자에게만 돌아간다. 그렇기에 규제는 새로운 가능성보다 문제점에 초점을 더 맞추고 이에 따라 규제는 점차 무거워져만 간다. 하지만 추가되는 규제의 비용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부담이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을 상당수의 사람은 간과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 자체를 포기한다면 최종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는 새로운 발명의 혜택을 누릴 기회를 빼앗긴 소비자이다. 이것은 유전자 조작 생물뿐만 아니라 모든 규제의 대상에 해당한다.

    이미 겁먹은 자에게 단순히 어떤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혹시 모른다는 공포를 떨쳐낼 수 없으므로 표현하지 않은 감정과 숨겨진 전제 가정을 모두 이해하고 반론해야만 한다. 이런 공포는 과학에 무지한 자의 비합리적인 발상이 아닌 새롭고 불확실한 현상을 맞이하는 사람의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당연하지만 그대로 두어서도 안 된다. 백신 또한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로 인류를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해방해주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백신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은 무시되거나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2019년에 발발한 COVID19의 백신이 개발된 후에도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여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한 공포를 반박하고 안심시키고자 노력했던 반면 유전자 조작 생물에 대한 불신과 공포는 이미 여러 국가의 법률에 뿌리내렸고 심지어 유전자 조작 생물을 재배하면 국제기구에서 지원금을 제공하지 않는 등 다른 국가의 시도조차 저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녀가 굶주리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는가. 얼마나 많은 숲이 불타오르고 얼마나 많은 강이 메말라갔는가. 유전자 조작 생물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에게는 백신 음모론자를 폄하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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