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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투바투 Sep 06. 2023

나쁜 시력 덕분에Ⅰ

  내 두 눈의 시력은 –4다. 이 시력으로 보는 세상은 바로 옆에 사람이 서 있어도 내가 아는 사람인지 긴가민가하는 정도다. 그래서 종종 출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바로 옆에 같은 팀원분이 먼저 아는 체해주시기까지 누군지 못 알아채는 경우가 태반이다.   

  

  보이지 않는 대로 사는 이유는 우선 첫 번째로 안경을 쓰고 움직이면 느끼는 어지러움이 남들에 비해 심한 편이라 제자리에서만 낀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써왔지만, 지금까지도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시야를 이리저리 옮길 때 움직이는 동공을 잡아주는 근육의 힘이 약해서 멀리 보다가 가까이 볼 때 남들보다 조금 더 어지러움을 잘 느끼기 때문이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안경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했을 거라고.


  두 번째로 렌즈는 눈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할 때만 쓴다. 가령 처음 가는 장소나 여행을 갔을 때, 처음 뵙는 자리에 가야 하거나.


  세 번째로는 다들 라식이나 라섹을 권하는데 그건 각막에 영구적인 손상을 주는 것이므로 최대한 피하고 싶다.     


  즉, 이러한 이유로 평상시에는 –4의 시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웃기고 황당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아마 중학생 때의 일이다. 멀리서 두 명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고, 다른 한 사람은 방방 뛰면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했다. 너무 반갑게 아는 체해서 ‘나와 엄청 친한 친구 중 누구겠지.’하면서 덩달아 나도 ‘안녕!’하고 방방 뛰며 인사했다. 가까이서 보니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셨다. 너무 당황해서 친구의 어머니께 가까이서 90도로 인사했던 기억이 있다.     


  익숙한 지인을 만날 때에는 보통 무슨 색을 입었는지 물어보고 그 사람을 알아보는 편인데, 이걸로도 황당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내가 더 늦게 도착했었고, 지인은 지하철 2번 출구에 노란색 맨투맨을 입고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노란색 맨투맨을 입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찾기 쉽겠다고 생각하면서 2번 출구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맞은편 의자에 노란색 맨투맨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분을 발견하고는 ‘저 사람이다!’하고 당차게 다가가서 휴대전화 가까이 고개를 아래로 숙여 아는 척을 했다. 귀에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든 그분은 다른 사람이었다. 너무 당황하여 죄송하다고 연발하고는 서둘러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노란색 맨투맨 없어요!”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뱉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지인은 2번 출구 아래가 아니라 위의 지상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지인과 같은 지하철 출구에 노란색 맨투맨을 입은 비슷한 덩치의 사람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며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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