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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뭐하고 놀까》

8편. 복사기 앞에서 펼쳐지는 잡담의 품격

by 라이브러리 파파

오전 10시 16분.


“프린터가 또 멈췄나?”

작게 중얼거리며 복사기 앞으로 걸어간다.


그 옆에 누군가 먼저 와 있다.

보고서 출력 중.

잠깐 눈이 마주친다.


그 짧은 순간,

자연스럽게 말이 시작된다.

“어제 회의 진짜 길었죠.”




아무 말 아닌 말이 주는 위로


“점심 뭐 드셨어요?”

“아직도 그 자료 하세요?”

“야근했어요?”

“그 팀은 원래 그래요…”


내용은 없다.

하지만

“당신 혼자만 그런 건 아니에요.”

라는 말이 담겨 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말이 시작되는 곳


사무실에서 말을 걸기 애매한 사람도

복사기 앞에선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업무도, 보고도, 경쟁도 아닌

그저 같은 공간을 쓰는 사람들로서.




기계는 무표정하지만

사람은 순간 따뜻해진다


“오늘따라 느리네요.”

“저 어제도 이 기계랑 싸웠어요.”

이런 짧은 말들이

기묘하게 웃음을 만든다.


대단한 유머도, 깊은 공감도 아니지만

딱 그만큼이

지친 마음에 여유를 남긴다.




복사기 앞 대화에는 속도가 없다


줄 서서 기다리는 1분.

종이가 출력되는 1분.

그 시간만큼은

다들 천천히 말한다.


목소리가 높지도 않고,

시선이 부담스럽지도 않다.

그저 '회사 생활'을 함께 견디는 동료로서.




잡담은 비생산적인 게 아니다


그 잡담이 있어야

업무도, 스트레스도,

사람 사이도 부드러워진다.


복사기 앞에서 나눈 말 한마디가

오늘의 기분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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