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화 “그날, 나는 다정했지만 너무 늦었다”–닿지 못한 진심의 무게

by 라이브러리 파파

그녀의 이름은 하정민이었다.
30대 중반, 입소한 지 두 달 남짓 되었던 날.
아직은 눈을 자주 피했고,
내가 인사를 건네면 가볍게 웃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시선을 거두곤 했다.
내가 아는 가장 조용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조용함이 오래된 벽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늘 그렇듯, 눈을 피하지 않고

짧게 인사를 건넸다.
“정민 씨, 잘 지내고 계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꼬리는 이상하리만치 굳어 있었다.
그날의 그녀는 왠지 모르게,
아주 작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알아차리고도,
나는 그저 “나중에 병실에 잠깐 들를게요”

라고만 말하고
그 자리를 지나쳤다.

오전 회의, 보고서 정리,
타 병실 상담이 끝나고
나는 약속대로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문은 반쯤 닫혀 있었고,
안쪽은 조용했다.

정민 씨는 창가에 등을 보인 채 앉아 있었다.

“정민 씨.”
나는 조용히 불렀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어깨는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나는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선생님… 너무 늦었어요.
오늘은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은 담담했고,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아팠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내게 다정함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내 다정함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녀는 내 말이 필요한 순간에
이미 나를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날, 그녀 곁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뻗지도 않고.
다정해지고 싶었던 순간이
상대에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음을
나는 마음으로 배웠다.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조용하다.
돌봄이란 마음을 건네는 일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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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그 타이밍을
제때 알아채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나쁘지 않아요.
그냥, 제가 너무 오래 참았어요.”

나는 그 말에
더는 무슨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날 이후로 조금씩 마음을 닫았다.
상담을 거절했고,
대답하지 않았고,
나를 봐도 피하지는 않지만
다시 웃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기록지에

‘오늘은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었음’이라는

문장을 종종 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해주는 대신
그저 곁에 있는 시간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녀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돌봄은 빠르지 않다.
늦은 다정함이 모든 걸

고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늦은 다정함조차
‘그 사람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고 싶다.

정민 씨는 지금도 이 병동 어딘가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녀를 지나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제시간에 도착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복도 끝에서
잠깐 그녀를 바라본다.


※ 7화 예고
다음 편에서는 지연이 자꾸 벽에 그림을

그리던 어느 중년 여성과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무언가를 지우려던 그녀, 그리고 지연이 지켜준

단 한 점의 흔적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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