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그는 나를 밀쳤고, 나는 더 천천히 다가갔다”–거리를 유지하는 용기
처음부터 거칠었다.
입소 첫날, 그는 스스로 이름도 말하지 않았고
기초 면담에서도 한마디 말없이 침묵했다.
누군가가 다가가기만 해도 흠칫 놀라거나,
갑자기 소리 없이 벽을 바라보며 손을 떨었다.
그리고 종종,
말없이 밀쳤다.
무언가를 던진다거나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단호하게, 분명히 ‘가까이 오지 마’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이름은 정문호 씨였다.
50대 중반, 체구는 작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팔을 들어 올리거나
턱을 들고 노려봤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도움받는 것보다,
차라리 내쫓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준비된 돌봄 매뉴얼을 다 읽고도
현장에서 번번이 멈췄다.
그는 틀을 벗어난 행동을 했고,
나는 매뉴얼보다 더 유연한 시선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나는 말 대신 ‘존재’를 선택했다.
그에게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지 않고,
그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내 손에 들린 기록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다 적어요? 다 보고하겠죠?
그래야 자긴 편하죠.”
그 말은 예상치 못한 찔림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아뇨, 제가 기억하려고요”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말이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았다.
며칠 후,
나는 그에게 작은 책자를 하나 건넸다.
“마음 편할 때, 이거 한번 읽어보셔도 좋아요.
아무 강요는 없어요.”
그는 책자를 보지도 않고,
내 손을 내리치듯 밀쳤다.
책이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무언가 실패한 기분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때, 주변에 있던 다른 환자 한 분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오늘은 그냥 가세요.”
그 말에 나는 그제야 알았다.
지금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내가 원하는 ‘변화’에 집중돼 있다는 걸.
그가 받아들일 준비는 하지 않았는데,
나는 먼저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물러섰다.
그리고 한동안,
문호 씨와 일정 거리를 두기로 했다.
말도, 눈빛도, 작은 제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관찰했다.
그가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하루 중 언제 가장 불안정한 지를 조용히 기록했다.
어느 날,
식판을 들고 복도를 걷던 문호 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내 쪽을 바라보더니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 책… 아직 있어요?”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하시면 드릴게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고,
그날 밤 내 서랍 속 책은 그의 침대 맡에 있었다.
그는 그날도, 다음 날도
그 책을 펴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그가 책갈피를 끼운 것을 봤다.
그 페이지에선 이런 문장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밀쳐도,
그 곁에 머물 수 있는 힘은
내가 가진 다정함에서 시작된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처음으로 문호 씨를 조금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밀쳤지만,
내가 다가간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천천히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던 방식은
결국 ‘기다림’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는 나를 밀쳤고,
나는 그 순간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 물러섬은 도망이 아니라,
곁에 남기 위한 준비였다.
지금도 나는 어떤 환자에게도
빠르게 다가가지 않는다.
먼저 묻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머문다.
말없이, 조용히,
그 사람이 밀칠 수 있도록 거리를 열어두며.
그 거리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시 문을 여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 6화 예고
다음 편에서는 지연이 다정했지만 너무 늦었던 한 날을 이야기합니다.
한 마디 위로가 미처 닿기 전에 닫혀버린 마음 앞에서,
그녀가 느낀 자책과 슬픔의 기록입니다.
주인공 지연과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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