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4화 “처음 죽음을 마주한 날 – 그날, 나는 울지 못했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그날 아침, 병동 복도는 유난히 조용했다.
새로 들어온 간호사는 말이 없었고,
식판을 옮기던 손길도 어딘가 망설이고 있었다.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걸
나는 문을 열기도 전에 느낄 수 있었다.
305호, 내가 매일 들르던 방이었다.
하지만 그날,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안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내가 문을 밀자,
침대 위엔 조용히 누운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인사하던 사람,
조용히 웃어주던 사람,
가끔은 고개만 끄덕이던 그분이
아무 반응도 없이 누워 있었다.
창가로는 햇살이 길게 드리워졌고,
침대 맡엔 식판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그대로, 잠든 듯 보였다.

“이제, 깨어나지 않아요.”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새벽 근무 간호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을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은 그 순간
무언가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말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창문은 약간 열려 있었고,

아침 바람이 병실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던 커튼이
그 사람의 발끝을 가볍게 스쳤다.



그 조용한 바람소리가
마치 마지막 인사 같았다.

나는 다가가
그의 이불 끝자락을 정리했다.
늘 손을 올려두던 위치,
그 손이 놓여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이불 위에 누군가의 생이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한기가 오래 맴돌았다.


그의 이름을 불러보려다
입술이 굳었다.
이미 돌아오지 않는 이름이 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보고서를 써야 했다.
시신 인계 절차, 가족 연락 상황,
사망 시간 기록.
나는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하나씩 체크란을 채워갔다.
문서엔 죽음이 너무 쉽게 기록되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평온하게 임종함.’
그 단어는 평온했지만,
그날의 공기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점심 무렵, 방이 정리되고
침대가 비워졌다.

Leonardo_Phoenix_10_A_quiet_hospital_room_at_dawn_soft_natural_0.jpg

나는 홀로 남은 305호에 들어가
그가 자주 앉던 창가 의자에 앉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하늘,
마지막으로 들었을 바람,
마지막으로 생각했을 감정.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 것 같았다.

창밖엔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잎 사이로 햇빛이 반짝였다.
그 풍경을 보며
그가 마지막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지,
혼자였을지,
두려웠을지
자꾸만 생각하게 됐다.


나는 문득,
그가 며칠 전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창문만큼은 닫지 말아 주세요.
여기서 바람이 느껴지면
아직 세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이 이제야,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감정을 눌러야 업무가 끝나고,
기록을 마쳐야 다음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내 감정은
늘 ‘다음’을 위해 잠시 보류되어야 했다.

죽음을 처음 겪는 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돌봄을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그에게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남겼는지,
그는 나를 기억했을까,
내 손길을 위로라 여겼을까.

그의 책상 서랍 안엔
자그마한 수첩이 한 권 있었다.
거기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도 창밖에 빛이 있다.”
그건 그가 남긴, 가장 조용한 유언처럼 느껴졌다.
말이 아닌, 삶의 자세처럼.


퇴근 후,
나는 집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제야,
내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날 밤,
아이들을 꼭 안고 잤다.
아들이 내 손을 꽉 잡고 속삭였다.
“엄마, 어디 가지 마.”
그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사라진다는 것,
떠난다는 것은
남겨진 사람의 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죽음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사망 보고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이 끝났다는 것이

어떻게 남겨진 사람의 시간을 흔드는지를
몸으로 알려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창문을 한 번 더 열어본다.
누군가가 아직 바람을 느낄 수 있기를,
그 바람 속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잠시라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죽음은 예상보다 조용하게 온다.
그 조용함은 오래 남는다.
나는 오늘도,
그 조용함 앞에
말없이 멈춰 선다.

그 사람의 마지막 자리에,
내 하루를 천천히 내려놓는다.



※ 5화 예고
다음 편에서는 지연이 거칠게 반응하던 한 남성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서는 용기’를 배워가는 순간을 그립니다.

이전 04화《지연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