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격차] 나는 이해받고 싶은데, 당신은 설득하려 했다
이 글은 결혼한 위대한 부부들과
결혼 예정인 행복해지고 싶은 부부들을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게 아니라…
내 말은 그게 아니었어.”
우린 종종 이렇게 말끝을 흐린다.
상대가 진심을 몰라줘서 서운했고,
나는 말한 그대로 전달했는데
왜 이렇게 어긋나나 싶고.
결혼 13년 차,
부부로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서로에게 설명하고, 오해하고, 풀다가 지친 날들이 많았다.
살아온 세월이 다른만큼.. 이라는
생각은 수도 없이 해왔다.
그것보다는 습관처럼 베여버린 말들과
행동 그리고.. 주변의 환경 탓(?)이
부부생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끔 한다.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생각부터 단순하게 가졌으면 한다.
나는 그냥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힘들다, 지친다, 오늘은 좀 쉬고 싶다.”
그 말을 꺼낸 건데,
당신은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네가 좀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힘든 거야.”
라고 했다.
순간,
서운함이 아닌
벽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감정을 꺼냈는데,
당신은 논리를 꺼냈다.
나는 공감을 원했는데,
당신은 해결책을 꺼냈다.
“내가 널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을 꺼내면
그게 ‘설득 당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리는 순간,
나는 말하기 싫어진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공감받고 싶은 말’을 꺼냈고,
당신은 ‘해결을 위한 말’로 받아들였다.
이 작은 의도의 차이, 방향의 어긋남,
그게 쌓이면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격차가 된다.
어느 날,
“힘들어.”
하고 말했을 때,
당신이 이렇게 말했다.
“힘든 거 알아.
근데 지금 우리 둘 다 힘들잖아.”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데,
감정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감정을 말할 때,
논리적 설명보다 먼저 ‘수용’을 원한다.
“그럴 수 있겠다.”
“많이 힘들었겠다.”
이 한 줄이
다른 어떤 말보다
사람을 진정시킨다.
근데 그 한 줄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감정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공감의 대상이다.
“네가 잘못 느낀 거야.”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
이런 말들은
맞는 말일수록
더 큰 상처를 남긴다.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서로를 고치려 들었던 순간이 있다.
그건 결국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내 기준에 끼워 맞추려는 욕심이었다.
진짜 위로는,
“네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 것 같아.”
라는 말 한 줄로 충분하다.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감정을 인정받는 순간,
마음이 열린다.
마음이 열려야
대화가 시작된다.
대화가 시작돼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격차는 크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조금만 다르게 말했고,
조금만 덜 들어줬고,
조금만 더 조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이제는 다짐한다.
당신이 감정을 꺼내면
내 의견보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먼저 듣겠다.
그리고 나도
당신이 나를 고치려 할 때,
나를 지키면서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 말투를 연습하겠다.
격차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 보기로 선택할 때
줄어든다.
우리가 서로에게
논리로 설득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으로 연결된 사이임을
잊지 말자.
그게 부부고,
그게 가족이다.
“아이 키우는 건 괜찮은데,
그걸 혼자 하는 느낌이 문제였다.”
부부가 함께 있어도
정작 ‘육아’는 혼자인 것 같을 때,
가장 먼저 지치는 건
몸이 아니라 관계였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보다 ‘우리’가 더 힘들었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육아가 아니라 관계가 지쳐버린 날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