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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 Mar 07. 2024

엄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8

아들이 대신 써주는 엄마의 인생

손님들이 모두 가고 나면 기력이 빠져 힘도 없고 허전했다. 공허 그 자체였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그러면 또 술을 찾게 된다.


술을 마시면 세상이 못마땅하고 잔소리가 심해졌다.


혼자 웃고 울며 몸도 아팠다.


아저씨가 술 마시고 늦게까지 놀다 오는 날에는 불안하고 가슴이 쿵쿵 망치질을 했다.


어느 날은 새벽녘 아파트 놀이터에서 술에 취해 "선이야!!!!! 가방을 왜 싸니!!!"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경비실과 주민들의 민원에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가끔 그런 날에는 집에 불도 꺼놓고 베란다에 숨어서 지켜봤다.


나는 그런 민망함도 잘 못 참는 성격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자기도 괴로우면 저렇게라도 해야 할까 싶으면서도 나는 그 핑계로 또 술을 찾았다.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은 점점 도수가 세졌다.


아저씨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너 뭐야!? 왜 나를 선택해서 나를 괴롭히냐?! 나와 무슨 원수를 졌냐고!"


막말을 해댔다.


그 사람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일 뿐인데...


부모님을 모두 잃고 형제들과도 의절하며 나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을 것이고 피눈물 날 때도 있었을 텐데...


딸이 아저씨와 혼인신고를 하라고 했다.


나도 서울에 있고, 둘 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보호자가 꼭 필요할 텐데 만약을 위해서라도 혼인신고를 하라고 졸랐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키다리 아저씨가 좋은 사람 만나서 가길 원했는데, 이 사람은 내가 그렇게 술독에 빠져살 때에도 그런 생각이 1도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로 혼인신고를 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보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보고 늦은 나이에 기뻐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이 남자만 없으면 술로 배를 채우니


퇴근해서 집에 오면 술에 취한 여편네가 욕하고 때리고 울고...


이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견뎠을까..


나 역시 술에서 깨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며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데, 되풀이 하면서 다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각서를 쓰고 술병에다 빨간 글씨로 '다시는 술 먹지 말자'라고 써서 현관문에 달아놓기도 했다.


어느 여름 아들이 지리산에 회사에서 단합대회 가는 길에 직원 여러 명과 함께 올라가다 차가 언덕에서 전복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한밤중에 지리산까지 차를 운전해 갈 용기도 없어서 기다리니 남원에 있는 병원에서 검사하고 다행히 많이 다친 사람도 없다고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며칠 후 얼굴과 귀 밑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 아들이 찾아왔다.


"엄마 걱정할까 봐 왔어요. 좀 쉬었다가 갈게요." 했다.


다행이 아저씨도 아들을 친아들처럼 반겨주었다. 


의리가 최고이고 돈아낄줄 모르는 가정생활이라고는 1도 모르는 남자였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는 아빠였다.


아들이 와서 잠시 술 생각이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런데...


아들이 왔을 때 며칠만 참고 있었지만 눈이 돌아가니 아들도 무시한 채 난 술을 찾아 마셨다.


울 아들 밤에 내가 술 사러 갈까봐 신발장 앞에 자리를 깔고 누워 '술 마시고 싶으면 아들 밟고 가라'며 누웠다.


새벽부터 술이 마시고 싶어서 아들 자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가려 하자 아들이 벌떡 일어나 "어디 가시려고요?"


깜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아들이 나를 붙잡고 애원했다.


"엄마, 이젠 그만하세요."


엄마를 붙들고 눈물을 흘린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결국 오산에 있는 한 정신과에 가서 원장님과 상담을 한 번 더하기로 하고 찾았더니 알코올 의존을 넘은 알코올 중독자라고 단정지어 말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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