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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로 Aug 27. 2023

폐쇄병동, 그 닫힌 문 너머

그림으로 마음을 열어보려 했던 곳.

2000년대 중반 전공의 1년차 때, BIC 볼펜으로 연습장에 그린 그림.

내가 전공의 1년차 때, 병동에 입원 중인 환자를 위해 그려준 그림이다. 당시 내가 맡았던 환자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젊은 여자 환자였다. 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병실에서 나오지 않고 무기력하게 고립되어 지내는 것이었다.


우울증상이 아니지만, 의욕이 없고, 주위에 관심이 없으며, 흥미를 못 느끼는 증상을 음성증상(negative symptom)이라고 한다. 조현병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증상으로 환청과 망상이 있다. 이를 양성증상(positive symptom)이라고 한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눈에 잘 띄는 양성증상 때문에 주로 걱정을 한다. 하지만, 만성화되었을 때 더 심각한 문제는 음성증상이다. 조현병 환자는 음성증상이 낫지 않아 사회복귀가 어렵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필요하고, 사람과 세상에 관심과 흥미를 느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적인 기능이다. 하지만 환자는 이 부분에서 가장 호전이 더디다. 회복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안타깝게도 약물 치료의 효과도 가장 늦게 나타난다. 


폐쇄병동(보호병동, 안정병동 등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여기선 가장 거부감이 큰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에서는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병동회의나, 심리극, 음악 및 미술치료, 집단치료 등이 있고, 보호자도 참여할 수 있는 정신건강교육도 있다. 특히 음성증상이 나아지려면, 신체적으로 많이 움직이여야 하고, 방에서 나와 사람들도 자주 만나야 한다. 이를 유도하기 위해 행동요법을 시행한다. 예를 들면 복도 걷기나, 프로그램 참여를 잘하면 보상을 주는 방식이다. 환자의 동의 하에 치료진과 계획표를 짜고 매일 수행 여부를 체크하게 된다. 그러나 계획표대로 잘 실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성증상이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내가 맡았던 환자도 그랬다. 통 밖에 나오질 않았고,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남아있는 피해망상과 관련된 경계심 때문이기도 했다. 입원 한지 1달이 넘었는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입원기간이 길어질수록 담당의는 조급해진다. 환자와 나름 꼼꼼하게 행동계획표를 짜보았다. “이대로 잘 따르신다면, 퇴원계획도 빨리 세울 수 있습니다. 조금만 힘을 내보세요.” 환자도 노력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그리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길게 면담도 해보아도 마지못해 동의할 뿐,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은 없었다. 환자는 무기력했고, 나는 무력함을 느꼈다. 환자는 그림을 좋아했다. 입원 전에는 노트에 그림을 종종 그린다고 했었다. 어떤 사람에게서든 관심을 유도하려면 좋아하는 부분부터 공략하는 것이 순리다. 하물며 ‘좋아함’이 소거된 환자에게는 더더욱 그래야 할 터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그림을 그려주었다. 응원하는 또래 친구의 모습이다. 행동계획표에 붙이면 조금 더 힘을 내지 않을까 싶었다. (사진이 남아 있는 이유는 매주 변경되는 행동계획표에 인쇄해서 붙이기 위해서였다.) 환자가 호기심에 한번 더 쳐다보기를 바랬다. 의욕의 불씨가 작게나마 살아나기를 소망했다. 당시 나는 경험은 없고, 의욕만 앞선 전공의 1년차였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 낼 수밖에 없었다. 치료자의 노력에 감동한 환자가 힘을 내서 활동을 늘려갔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환자는 그림을 보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웃어 보였을 뿐, 병동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환청과 불안 증상은 호전되어 2~3주 후에 퇴원했다. 퇴원 후 몇 달 정도 지났을까? 폐쇄병동의 다른 환자들에게 매달리느라 환자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을 즈음, 교수님으로부터 외래에서 진료 중인 환자의 근황을 들었다. 환자는 꾸준히 호전되어서 곧 대학교에 복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누구나 빨리 좋아지기를 바라지만, 결국 환자만의 시간이 있는 법이다. 입원 후 3개월간 매일 면담을 하고, 함께 분투했던 환자가 완쾌되고 있다는 소식은 전공의에겐 작지 않은 보상이다. 환자 스스로 꾸준히 투약을 잘 유지한 탓이겠지만, 긴 여정동안 환자가 포기하지 않도록 작은 디딤돌을 놓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폐쇄병동은 정신과 치료를 떠올릴 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용어 중 하나이다. 누군가를 자유의지에 반해서 공간적으로 제한을 두는 상황은 군대, 교도소 외에는 정신과 폐쇄병동이 유일하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선 잘 모르기 때문이다. 군대는 남자라면 누구나 가보는 곳이고, 교도소는 본질적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곳이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폐쇄병동을 경험할 수 없다. 견학이나 체험코스조차 있을 수 없다. 사실 병동은 자유의 박탈이 핵심이 아니다. 병에 걸렸다고 벌 받는 곳이 아니다. 위험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며,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치료라는 같은 목표로 치료진과 환자들이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커뮤니티일 뿐이다. 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전공의 1년차는 매일매일 환자를 만나서 속된 말로 ‘지지고 볶고’ 지낸다. 이 시기만큼 치열하게 환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저 그림은 그 시절의 흔적이다. 이후에도 몇몇 환자들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주었었다. 이런 방식이 꽤 효과적이거나,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사실 없다. 어느 정신과 교과서에도 그림을 매개로 환자와 의사소통을 하라는 설명은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칫 불필요한 개입이 될 소지도 있다. 


조현병 치료에서 약물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치료 초기에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장벽은, ‘병을 인정하지 않는 환자가 어떻게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다. 여기에 치료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엔 특별한 요령은 없다. 환자의 마음을 사는 수밖에 없다. 의심과 불안이 가득한 환자의 마음에 ‘이 사람은 그래도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지.’하는 일말의 믿음을 심고 키워가야 한다. 공감을 잘해야 하고, 일관되고 지지적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이 그리 쉬운가? 환자마다 사연이 다르고, 개성이 있기 때문에, 치료진의 유연함과 임기응변이 요구된다. 매뉴얼이란 있을 수 없으니 이 부분은 각자의 몫이다. 그림 같은 걸 그리지 않아도, 환자의 신뢰를 잘 이끌어내는 유능한 선배나 동료들이 부러웠다. 난 단지 그냥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을 뿐이다. 폐쇄병동은 이런  곳이다. 폐쇄된 마음을 천천히 개방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세상과 타인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분들이, 다시 신뢰를 회복해 가는 곳이다.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대화로, 가끔은 서로 공감하는 매체를 매개로, 하지만 항상 온 힘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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