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놀이에 응해주다
폭염인 날씨에 서재 방에서 30분째 땀을 뻘뻘 흘리며 츄르로 찬이를 유인하고 있다.
오늘은 반드시 예방접종을 맞히러 가야 한다.
오늘은 바늘 같이 자란 발톱도 꼭 깎여야 한다. (동물병원에선 진료 후 발톱도 깎아주기 때문이다)
도무지 들어올 것 같지 않던 찬이는 거짓말처럼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케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난 성공할 때까지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이라도 찬이를 유인할 생각이었다.
3월 말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찬이는 아직 예방접종을 전혀 맞지 않은 상태이고 고양이 예방접종은 3주에 한 번씩 최소 세 번 맞아야 하기에 지금부터 시작해야 9월엔 접종을 끝내고 10월에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다. 더 늦어지면 발정기가 시작되어 집 안에 스프레이(고양이가 소변을 뿌리는 행동)를 하거나 가출을 감행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케이지 가방에 담긴 찬이를 데리고 단골 동물병원에 가 찬이 등록을 하고 고양이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찬이의 입양 상황과 사람을 무서워하는 상태임을 수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시며 진료실 안으로 찬이를 데려가셨다.
그런데 진료실 안에서 큰 소동이 벌어진 듯했다.
한동안 진료실 안에서 우당탕, 소리 지르는 소리, 잡아 잡아 외치는 소리, 찬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등등이 들려왔다.
대기실에서 눈이 동그래져 앉아 있는 내 앞으로, 얼마 뒤 수의사 선생님이 한 시간 전 찬이를 유인하며 땀에 푹 절어있던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진료실에서 나오셨다.
나를 보자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보호자님, 찬이 발톱은 못 깎습니다! "라고 외치셨다.
찬이가 너무 겁이 많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상태인 데다, 힘은 또 무진장 세서 엄청나게 날뛰었다고 한다.
발톱은 2차 접종 때 깎는 걸로 하고, 그땐 꼭 예약을 하고 오라고 하셨다.
찬이 진료를 보려면 인력이 더 필요할 것 같기 때문에 "찬이 오는 날입니다"라고 예고(경고?)를 해달라 신다.
진료실을 나가기 직전 선생님과 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치즈냥이가 성격이 좋다는 말은 다 낭설이네요 선생님"
"네, 보호자님, 저도 오늘로 그 생각이 조금 바뀔 것 같습니다"
"^ㅡ^;;;;;;;;;;;;"
어쨌든 가장 큰 숙제였던 예방접종을 성공해서 기뻤다.
찬이를 케이지에 넣은 김에 찬이방인 서재방 창틀도 닦고 며칠 전 뜯어낸 붙박이장 위도 청소를 했다.
깨끗해진 방에 케이지 가방을 놓고 문을 열어주니 후다닥 나와 붙박이장 옆 구석 공간에 숨는 찬이.
병원에서의 기억 때문에 더 숨어 있으려고만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 날 저녁 찬이는 처음으로 사냥놀이에 응해주었다.
자주 얼굴을 비추고 말을 걸어주니 찬이도 조금은 내게 익숙해지나 보다.
'저 커다란 존재는 아직 조금 무섭긴 한데 맛있는 밥도 주고 위협도 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은 존재인 듯?'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주 얼굴을 비추지만 대신 방문도 살살 열고 닫고, 다가갈 때도 조용히 천천히 가야 한다.
소리와 액션이 크면 고양이가 놀라고 경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초록색 강아지 풀처럼 생긴 장난감을 바닥에서 계속 흔드니까 숨어있던 상자에서 찬이가 나오는데 너무 기뻐서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제 날 보면 도망가지 않고, 숨지만 않고, 하악질 하지 않고, 같이 놀기 위해 나와주는 찬이가 되었다.
찬이가 온 지 나흘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