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렌터카, 제주도 서쪽 여행

10년 장롱면허 탈출기-2

by 오호라

야심 차게 제주도 렌터카를 예약해놓고 내심 꽤 걱정이 되었다. 제주도 운전과 관련된 이것저것을 검색하다가 코너링을 하는 도중에 운전미숙으로 인해서 연석에 올라탔는데 수리비가 무려 4천만 원이 나왔다는 얘기를 트위터에서 보기도 했다. 나는 확실히 ‘완전 자차’ 보험이 되는 렌터카를 예약하기는 했으나 어쨌거나 사고가 나면 다시는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아질까 봐, 그리고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여행 이틀 전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에 비장한 마음으로 ‘10년 장롱면허 탈출기-1’를 쓰고 다짐했다. 나를 믿기로,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로. 어쨌든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자 여행 전날에는 유튜브로 제주도에서 운전하는 Vlog와 ‘제주도에서 운전할 때 주의할 점’ 같은 영상을 여러 개 찾아보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 첫날,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렌터카 셔틀버스를 타는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운전하기에 힘들지 않게 날씨가 맑았다. 업체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빌릴 때에 여러 가지 주의사항에 대해 안내를 받았는데, 운전자를 한 명 더 등록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옆에서 먼저 차를 빌린 가족은 부부가 함께 운전자로 등록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은 아쉬웠으나 당당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 혼자 운전할 거예요’라고 했다. 자연스러웠나? 과하게 비장해 보였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살짝 하면서도 되도록 렌트를 처음 해보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며 주의사항을 유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그때 안내해주셨던 렌터카 직원은 다행히도 나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한 번에 잘 알아듣게 설명해줄 정도로 친절했다. 렌터카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쏘카를 세 번 빌려본 경험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쏘카를 빌릴 때와 마찬가지로 꼼꼼히 사진과 영상을 남편과 함께 각자 핸드폰으로 찍고 출발했다. 낯선 길에 대비하기 위해 공항에서 오면서 렌터카 사무실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을 로드뷰로 쭉 보았는데,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렌터카 사무실에서 나와 공항 옆길을 거쳐갈 때 차선이 조금 복잡해서 두 번 정도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놓쳤지만 그 정도면 꽤 무난하게 공항을 빠져나와 서쪽 해안도로를 탔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은 ‘운전하는 와이프’가 있어서 좋다며, 멋있다고, 운전하는 내 옆모습을 사진 찍었다. 사진을 보니 역시 너무 경직되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과하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차 안에 틀어진 노래를 따라 부르며 리듬을 탈 수 있을 정도의 긴장감. 또한 도심에서 서쪽 방향으로 달릴수록 도로에 차가 점점 적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점점 더 편안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지는 해를 직접 눈에 때려 맞으며 운전을 하는 게 조금 힘들었으나 그마저도 하늘이 예뻐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눈이 부셨지만 선글라스를 쓰지 못한 건 선글라스에 도수가 없기 때문이었는데, 운전 중에 눈부심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서야 도수 있는 선글라스가 운전자에게 필수라는 걸 이번에 절실히 느끼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바로 선글라스를 안경점에 맡겼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이 찍은 사진 - 첫째날 숙소가는 길

본격적인 여행 일정은 둘째 날부터 시작되었는데, 차가 있으니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것부터 수월했다. 어디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부를지 계획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대신 주차장이 있는지, 어디에 차를 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게 추가되었으나 점심을 조금 일찍 먹고 이동하기 시작하니 다른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어느 정도 피해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주차장도 대체로 한산한 편이었다. 운전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주차였던 게 무색할 만큼 여행 내내 주차 때문에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이 주차운이 무척이나 좋았다. 날씨 운도 좋아서 여행 내내 맑았다. 제주도 도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한다던 회전 로터리도 여러 번 만났지만 그때마다 차가 거의 없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빠져나왔다. 알고 왔던 건 아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주도 중에서도 서쪽이 가장 한산한 편이어서 돌아다니기 좋다고 한다. (이점은 나중에 초보운전자들이 참고하시길)


다만, 서울로 올라오는 마지막 날 아침에 비가 왔다. 빗길 운전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비 때문에 양 사이드미러가 잘 보이지 않기도 했고 앞에 큰 차가 있으면 전면에서도 물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확실히 힘든 부분이 있었다. 차선을 변경할 때 옆이 보이지 않아서 무섭기도 했고, 거의 다 와서 들어가는 골목이 보이지 않아서 길을 놓치고 한 바퀴 돌아서 들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기적적으로, 반납하기로 한 시간 오전 9시 정각에 딱 맞게 도착하여 아무런 이상 없이, 여행 중에 한번 주유해둔 것도 계기판이 딱 맞아떨어져서 추가 요금 결제할 것도 없이 너무도 깔끔하게 렌터카 반납을 마쳤다. 이번 여행의 운전에 대해서 글로 쓰리라 다짐했었는데, 쓰기 서운할 만큼 별일 없이 무사히 그렇게 운전을 마무리했다.


운전이 익숙한 편이 아닌데도 차 있는 여행이 역시나 쾌적하다는 걸 돌아다니는 내내 느꼈다. 그동안 면허를 진작 활용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이제라도 자립할 수 있는 운전자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3박 4일 동안 연달아 혼자 운전한 건 처음이었는데, 큰일 날 뻔 한적 없이 급정거 급가속 급제동을 하지 않고, 여행 내내 목적지까지 큰 어려움 없이 잘 돌아다닌 나 자신이 대견하다. 남편은 남들이 운전하는 걸 볼 때는 운전이 남 일처럼만 여겨졌었는데, 내가 운전하는 걸 보니 본인도 이제는 운전면허를 미루지 않고 따야겠다고 말한다. 한 달 전 계약하고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신차도 있으니 미룰 이유가 더더욱 없다. 나는 우리 집안의 베스트 드라이버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더욱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신창풍차해안도로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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