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간 여성 우울 예방을 위한 마음 돌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작년에도 시에서 주관하는 비슷한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탈락했다. 지원서를 넣었는데 깜깜무소식이라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10명 모집에 무려 200명이 넘게 지원했다고 했다. 사방팔방 둘러보아도 나만 우울하게 사는 것 같은데 이 작은 도시에서 그 200명은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 때문에 떨어졌지만 그들이 있어 반가웠다.
지난 경쟁률을 떠올리며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선발됐다는 연락이 왔다. 올해는 프로그램 형태가 바뀌고 작년보다 모집 인원이 2배 이상 늘었다.뽑히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의 선발 기준은 우울 자가 선별 검사 결과다. 이미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도, 정신과 상담을 받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글을 쓰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도,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데도, 분명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느껴지는데도 여기에 뽑힐 정도로 내 상태가 아직 심각하구나. 이 도시에서 가장 우울한 여자로 뽑혔단 사실에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선생님, 제가 도시에서 가장 우울한 여자로 뽑혔어요. 저는 스스로는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는데 아직 멀었나 봐요."
"신니씨가 그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그 시점엔 도시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닌 거죠."
김날따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래. 지금 내가 느끼는 게 옳아. 다시 설렘 모드를 장착하고 개강을 기다렸다.
개강일이 다가올수록 다른 참가자들을 얼른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이 발동했다. 정신과 상담을 다닌 지 어언 1년 7개월, 외로운 싸움이었다. 내게는 연대가 필요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울한 아우라를 한껏 뽐내는 침침한 얼굴일까? 나처럼 병원을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을까? 우리가 만난 걸 반가워할까? 다들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우리가 나눈 얘기를 비밀로 잘 지켜줄까?
고대하던 개강일, 강의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누구도 얼굴에 ‘우울’이라고 적혀있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하고 발표도 하고 박수도 치고 재미있으면 웃었다. 서로에게 강점 스티커를 붙여주고 수업 자료를 배분하거나 할 땐 서로를 배려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라고? 다들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나도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속으로는 깊은 어둠을 안고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우울은 사람을 안으로, 더 안으로, 아래로, 더 아래로 한없이 구겨 넣는다.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때로는 문밖으로 한 발짝 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더더구나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는 언제든 생활 반경이 겹칠 수 있으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려면 결단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기를 쓰고 여기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의지와 용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애쓰는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는 사람. 그걸 깨닫는 순간 뜨거운 애정이 느껴졌다.
다른 참가자들이 붙여준 강점 스티커
나는 강사님에게도 반해버렸다.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 강사님의 크고 선명한 목소리에서 벌써 시원한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강사님은 한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다가 3년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몸이 아팠다고 한다. 그러다가 긍정심리학을 만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법을 배웠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여 이렇게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가만, 한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면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최소 40대였을 텐데, 그럼 40대에 시련을 승화시켜 긍정을 전도하는 강사가 되었다는 말이잖아? 똑같이 40대에 2년째 고생하고 있는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가슴이 뛰었다. 변화의 산증인이 바로 내 앞에서 너도 할 수 있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강사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구성원 특성상 수업 중 종종 누군가 울기도 했다. 나도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벌써 울었다. 한번은 사슴 눈망울을 가진 참가자가 울었다. 매 수업 시작마다 오늘의 감사한 일 한 가지를 발표하는데 사슴눈님의 순서였다. 그녀는 우울감이 심해서 정신과에 다닌 지 한 달 되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정신과의 문을 두드릴 정도면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그녀는 어제 혼자 산책을 하다가 꽃을 봤는데 꽃이 이렇게 예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면서 울었다. 작은 여유를 찾은 그녀에게 모두가 가슴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냈다.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내가 손을 들었다.
“사슴눈님은 정신과 다닌 지 한 달 됐다고 하셨는데 어제 꽃이 이렇게 예뻤구나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정신과 상담 1년 7개월째거든요. 그렇게 상담을 오래 했는데도 아직도 꽃이 눈에 안 들어와요. 제 눈에는 모든 게 마지막 잎새로 보여요.(사실이다. 나무에 핀 꽃만 봐도 우울하고 서글픔) 그런데 사슴눈님은 병원 다닌 지 한 달 만에 꽃이 예쁜 게 보였으면 우울증 중에 엄청 우등생인 것 같아요. 저는 너무 부러워요. 앞으로도 금방 좋아지실 것 같아요.”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을 담아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건지 꼭 알려주고 싶었다. 그 바람에 얼떨결에 내가 병원을 오래 다녔다는 것까지 오픈해 버렸다. 오히려 더는 감출 게 없다는 생각에 후련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이곳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발표할 일이 있으면 먼저 손을 들어 발표했다. 첫날에는 ‘아무리 꾸며도 어차피 우울증인 거 다 아는데’하는 마음에 맨얼굴로 갔는데 좀 더 생기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에 2회 차부터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도 그리고 갔다.
상대의 눈물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응원했다. 여기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온기였다.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마음속의 응어리를 조금씩 덜어냈다. 울어도 부끄럽지 않은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로웠다. 얼마나 우울했는지 괴로웠는지 고백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치고 강점 스티커를 붙여줬다. 나는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몇 바퀴를 돌면서도 꾸역꾸역 찾아오는 그들이 좋았다. 수업 시작 시간을 한참 넘겨서라도 부산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들이 좋았다. 그들의 애씀이 나를 위로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당신 참 좋은 사람이다’이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는 내게 등을 두드려주는 듯한 든든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이 도시 어디선가 분주히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그들에게 나의 응원이 닿기를 바란다. 혹시 우울함으로 버거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당신의 애씀을 내가 보았노라고,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