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만 쌓여가는 일상
교통사고가 났다.
삼거리 상시 유턴 구간에서 유턴을 하던 도중 3차선으로 주행하던 직진 차량의 후미와 내 차량의 정면이 충돌했다. 사고 이후 제일 먼저 내 몸을 구석구석 만져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외상도 없고 크게 아픈 곳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상대방 차주에게 달려갔다. 예기치 못한 충돌에 많이 놀라신 듯 보였지만, 다행히 외상은 없었고 통증을 크게 호소하시지는 않으셨다. 각자 보험회사를 부르고 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명함을 건네며, 연신 사과를 드리며 계속해서 아프신 곳은 없는지를 살폈다. 상대방 또한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험 접수가 끝나고 현장이 정리되니 부정적 감정이 밀려왔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돈'이다. 사실 나는 차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밤마다 부모님의 차키를 몰래 슬쩍하여 드라이브를 나가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운전이 썩 즐겁지 않았다. 주로 서울에서 약속을 잡는 만큼 대중교통이 익숙했고 무엇보다 이동하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더 큰 장점으로 인식되었다. 최근 근무지가 변동되면서, 셔틀버스로 통근하는 것보다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것이 왕복 한 시간 넘게 절약되기에 큰 마음을 먹고 구매를 결심했다. 약 3주가량 중고차 매물을 찾아보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온 중고 경차를 구매하였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구매한 가격과 맞먹는 수리비가 예측된다고 하니 너무 속이 상했다.
하지만 수리비보다 사고 직후 상대방의 시큰둥한 말과 행동이 계속 신경 쓰였다. 물론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당혹스럽고 내가 원망스럽게 보이는 점을 이해한다. 교통 신호를 준수하며 계획한 일상으로 문제 될 수 없이 흘러가던 날에 큰 변수를 제공한 당사자이니, 사고 직후 직접 찾아와서 사과를 한다 해도 속상한 마음이 더 클 수 있다. 하지만, 나도 함께 사고를 겪은 사람으로 어쩐지 내가 말을 건낼수록 내 안위나 내 상태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 같아 어쩐지 조금 슬픈 감정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남이 나로 인해 불편하거나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않게 조심하며, 혹여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빠르게 사과하고 필요하면 연기까지 하면서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나와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면 설령 그때의 내 감정이 완벽한 진심이 아니었다고 한들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건강하니 되었다. 액땜했다고 생각하자고 사고의 전환을 지속 시도하고 있지만 사고 이후 일주일이 지나고 있는 지금에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많이 힘들다.
주변에서 현실적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보험회사 오기 전까지는 크게 말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보험회사가 있는 거다. 굳이 나서지 마라" 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때 나와 마주했던 상대방의 태도 또한 이해한다.
하지만, 다수가 그렇다고 한들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마음이고, 지금까지 큰 탈 없이 괜찮았기에 크게 위의 조언들을 새겨듣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불안한 느낌이 많이 든다.
미움받는 연습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