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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박이 Jul 21. 2021

성냥 파는 소녀

성냥팔이 소녀 -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도심 속 빌딩 숲, 폭염으로 인해 콘크리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는 성냥을 들고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한 연구소에서 받아온 성냥이었다. 취직을 하기 힘든 소녀에게 연구소에서는 일종의 테스트를 했다. 할당된 성냥을 전부 팔기만 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하얀색 블라우스는 땀으로 흥건했고,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바쁘게 지나가는 이들은 소녀를 힐끔 쳐다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이 성냥은 특별했다. 연구소에서 말하길 한 번의 불꽃으로 피로도를 감소할 수 있는 성냥이라고 했다. 소녀는 연구소에서 지원받은 매대를 깔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성냥 사세요. 피로를 없애주는 성냥이에요!”  

    

 50대처럼 보이는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가 멈춰 섰다. 그리곤 체험을 해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성냥갑에서 성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지직! 그 불꽃을 아저씨에게 건넸다. 성냥은 온기를 주며 환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의 손이 저녁 노을처럼 붉어졌다. 한순간 그의 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듯했다. 잠시 휴가를 온 듯한 기분이 들더니 성냥이 꺼지자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손 안에는 다 타버린 성냥만 남아 있었다. 몽롱한 얼굴로 성냥을 바라본 그는 만족한 얼굴로 성냥을 사 갔다.   

  

 “성냥 사세요! 이 성냥으로 상쾌함을 가져가세요. 단 한 번의 불꽃으로 피로를 말끔하게 없애주는 성냥이에요!”     


 빨간 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 멈춰 섰다. 전날 과음을 한 탓에 두통이 심한 그녀는 상쾌함이 절실했다. 소녀는 급하게 성냥을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불꽃은 밝은 연둣빛을 띄며 환하게 타올랐다. 한순간에 그녀는 피톤치드 숲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쾌한 공기가 쑤욱 들어오기 무섭게 성냥이 꺼졌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소녀의 손을 꼭 잡고 정기 배송을 부탁했다.    

  

 소녀의 손엔 어느새 까만 재가 잔뜩 묻어 있었다. 소문이 난 건지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그중 유독 어깨가 작아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편의점 일이 끝나고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가는 소년이었다. 소녀는 소년을 위해 서둘러 성냥에 불을 붙였다. 치지직! 성냥은 타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불이 어찌나 멋지게 타오르던지! 주변이 파아랗고 커다란 불빛으로 가득 찼다. 소년이 불꽃 위로 손을 올리자 정성껏 저녁을 차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갓 지은 밥 냄새가 소년의 코 앞까지 풍겨오는 듯했다. 소년의 두 볼은 점점 빨갛게 변하고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파르르! 한 순간 불꽃은 꺼졌다. 멍하니 성냥을 바라보던 소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생각에 잠긴 소년은 떠나는 듯했지만 다시 돌아와 성냥을 사 갔다.  

    

 성냥을 완판한 소녀는 연구소로 달려갔다. 소녀는 더 이상 인턴이 아니었다. 더 많은 성냥 꾸러미가 쥐어졌다. 소녀는 점점 더 깊숙이, 빌딩 숲 안으로 들어갔다. 손 끝에 묻은 까만 재는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거칠어진 손과 따끔한 목, 늘어난 피로가 소녀를 따라다녔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소녀의 집엔 성냥이 가득했다. 컴컴한 , 소녀는 딱딱해진 발을 주무르며 성냥불을 켰다. 성냥이 무척이나 환하게 빛나서   전체가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소녀는 불꽃을 보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소녀의 앞에는 무엇이 펼쳐졌을까.


 태양이 측은한 한 사람의 모습 위로 떠오른다. 눈을 뜬 소녀는 성냥 꾸러미를 들고 빌딩 숲 안으로 들어간다.      


 “성냥 사세요. 단 한 번의 불꽃으로 당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없애주는 성냥이에요.”     


 소녀의 목소리가 그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린다. 소녀는 여전히 쓰라린 목을 만지며 서있다. 팔아도 팔아도 사라지지 않는 성냥과 함께.








메인 사진 © dnkphoto, 출처 Unsplash

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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