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은 근데 왜 채널A 다녀요?
처음 들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지난 2014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6개국 중화요리대회 취재차 함께 떠난 요리 잡지 편집장이 던진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옆에 앉아있던 촬영기자 선배도 적잖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내가 일하던 회사와 그곳에서 취재해서 쓴 기사에 대한 자부심은 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순 없었다. 나는 주변에서 바라보는 종편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첫 직장이었던 지역 민방을 떠나 종편으로 이직할 때에도 왜 하필 그곳이냐고 선배들은 물었다. 그때에도 아무 말 없이 옅은 미소만 보였다. 서울에서 기자로 일할 기회를 준 곳이기에 간다는 당연하고 뻔한 대답으로는 내 정치적 성향을 궁금해하는 그들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라고 일일이 설명하기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궁색해 보일 것 같았다. 그녀가 자리를 떠나고 촬영기자 선배와 단둘이 대화했다.
"야. 우리 회사가 뭐가 그리 나쁘다고 저러는 거야?"
"그러게요. 종편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판에 박힌 거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뉴스를 본 적이 있냐고, 뉴스를 보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따지고 싶었다. 시청자 다수 혹은 국민 절반이 생각하는 종편에 대한 이미지는 #조중동 #보수 #이명박근혜방송에 가까웠다. 모 의원은 종편이 보수 정권에 의해 특혜를 입고 기형적으로 탄생한 방송사라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오랫동안 벌이기도 했다.
조중동과 종편이 보수 언론 매체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보수 언론이라고 해서 보수 정치세력을 비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내가 근무했던 그곳은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내각 인사검증에 있어서 어떤 언론사보다 더 열정적으로 취재해 보도했다. 성접대 비리 의혹 보도에서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고 수많은 단독보도를 이끌어 냈다. 법무부 차관의 실명을 처음 밝힌 것 역시 채널A 였다. 전직 대통령과 재벌의 세금 탈루 의혹 취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나는 그곳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부끄럽거나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미디어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고정관념은 무섭다. 종편으로 이직하기 전 나 역시 거부감과 두려움이 앞섰다. 입사하고 직접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 생각은 변했다.
현재 언론은 극렬하게 둘로 나뉘었다. 보수 언론은 정권 공격에 혈안이고 진보 언론은 정권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 기자의 칼날은 보수 진보 상관없이 언제나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정권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을 향해 과감하게 더 큰 쓴소리를 내야 한다. 내 눈엔 진보 정당이 집권한 현재 상황에선 보수 언론이 상대적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권에 대한 감시와 동시에 보수 세력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과 그들에 대한 비판 역시 보수 언론의 몫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진보 언론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의 잘못에 침묵해선 안된다.
정치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발전해왔다. 한쪽 세력이 지나치게 우세한 상황을 늘 경계해야 한다. 선한 절대 권력마저도 감시와 견제에서 자유로워지면 언젠가 썩고 곪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보수 정치의 실정에 대한 실망이 지난 총선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는 비판과 감시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던 보수 언론의 책임이 크다. 지금의 진보 언론은 그 교훈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