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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Apr 25. 2024

화장실에서 때밀이 수건으로 매일 손 씻는 아저씨

그래도 공단 번화가(?)에서 일하는 은행원

 공단에서 근무한 지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근무하다 바뀐 환경에 이젠 적응이 어느 정도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은 낯선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중 하나는 화장실이다. 서울의 대형 오피스 근무할 때는 화장실마다 설치된 비데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비데를 찾는 건 사치인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 화장실에 휴지는 잘 비치되어 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는 분이 계셨다. 매번 화장실에서 손을 너무 열심히 씻으신다.

지나가시는 분이 한마디 하신다.

"뭘 그렇게 열심히 손을 매일 씻어?" 서로 잘 아시는 듯 빙그레 웃음을 지으신다.

때밀이 수건으로 빡빡빡 정말 열심히 손을 씻으신다.

'기름때가 묻으셔서 그러신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은행이 있는 공간이 유통상가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름때를 그렇게 묻히면서 일하시는 분은 없으시다.


그러다가 은행 안에서도 그분을 가끔 뵙는다. 은행에서 보온병에 물을 받아서 나가신다. 그렇게 몇 번을 뵙다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다.



은행 앞 대로변에 철재로 된 조그만 가게가 있다. 사실 그곳에 그 가게가 있는지도 두어 달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곳은 구두 수선 가게였다. 그리고 그분은 구두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다.


장갑을 끼시면 좋으실 텐데. 구두약이 묻으신 손이 싫으셨나 보다. 아니 사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손을 씻으시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요즘 은행에서도 양복을 잘 안 입는다.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거의 안 입던 양복을 영업점에 근무하면서 그나마 가끔 입는다. 양복만큼 단정한 복장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왠지 나에게 어떤 새로운 다짐을 주는 것 같아 종종 입는다. 회사 방문할 약속이 잡혀 있을 때는 어김없이 양복에 구두를 신는다. 구두도 오랜만에 신었더니 발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요즘엔 양복에 운동화를 신기도 한다. 외부 미팅이 있을 때만 구두로 갈아 신는다.



그러고 보니 본점 오피스에서 어느 순간부터 구두 닦는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녹즙이나 요구르트를 배달해 주시는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때 건물 출입을 통제하면서부터 그런 분들이 사무실을 오고 가실 수 없게 되셨고, 그 이후에는 수요가 줄어든 것 같다. 자율복으로 복장이 바뀌면서 구두를 신지 않은 까닭도 있고, 편의점의 증가로 아침 음료를 굳이 배달시켜 먹지 않아도 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다행인지 아직 공단 은행 영업점은 근처에 구두 아저씨도 뵐 수 있고, 아침엔 요구르트 아주머니도 뵐 수 있다. 그분들의 일 할 공간이 아직 남아 있어 다행이다.



사실 공단 은행 영업점 근처에 구두 아저씨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가 일하는 곳이 아주 외진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전에 일했던 공단 영업점은 훨씬 안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구두 닦으시는 분이 오시지도 않으셨다. 구두 통을 들고 몇 번 오셨다가 말없이 안 오셨다. 한두 명을 위해서 거기까지 오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공단 안 쪽이든 바깥쪽이든 중심이든 외곽이든 큰 의미는 없지만 그냥 나 스스로 위로해 본다. 조금은 번화한(?) 공단에 일하고 있다고 말이다.



오늘은 서울에서 미팅이 잡혀 있어서 추가로 두어 군데 다른 사무실도 들렀다. 그런데, 공단과는 다른 서울 분위기에 조금 설레기도 하고 또 조금 낯설어지는 걸 보며 웃음이 나왔다. 사는 집도 서울이고 서울도 미팅등의 이유로 자주 오면서 공단 영업점 직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서울 오피스 빌딩 숲이 낯설어져 버린 건 왜일까? 마치 군대에서 휴가 나온 군인처럼 말이다.


어느 곳에서 일하든 이런저런 분들을 뵙고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일도 좋다. 자기 최면일 수도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화장실의 낯선 아저씨가 어떤 분이신지 알고 웃으면서 지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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