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신혼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완결 최종편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제 포르투로 떠나는 날. 하지만 마지막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이틀 전 산티아고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팔과 목, 얼굴에 붉은 물린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다. 혹시 베드버그일까 걱정을 했지만 물린 자국이 베드버그와 다르기도 했고, 약국에서도 모기에 물린 것이라며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을 주었기 때문에 이 약만 잘 바르면 문제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갈 생각이 끝까지 없었지만 어젯밤부터 아내가 완강히 주장했다.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아닌 게 아니라 팔과 목의 붉은 반점이 계속 커지고 있긴 했다. 그럼에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아내는 계속해서 걱정을 하며 병원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타지에서 병원이라니, 절차도 복잡할 것 같고, 보험이 있긴 하지만 병원비도 많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까지 안 가도 된다고 투덜댔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화해는 했지만, 어제의 다툼이 남긴 여운에 아내의 걱정을 오버하는 것으로 치부한 것이 합쳐져 서운한 마음이 들게 했다. 아침 식사를 하며 얼마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또다시 싸울 수는 없었다. 사과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산티아고에서 병원에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내가 구글링을 해 30분 넘게 걸어 찾은 곳은 응급실 전용이라 진료가 불가했다. 우리는 또 20분을 걸어 다른 병원부지로 향했다. 병원 가는 길이 녹록지 않아 아내는 아내대로 미안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병원까지 알아봤는데, 안 가도 된다고 투덜거렸으니.
감사하게도 아내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병원을 찾아 앞장섰다. 서먹한 공기가 돌긴 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왔다. hm rosaleda
세 번째 산티아고 길이었지만 스페인에서 병원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료를 받는 과정이 낯설었는데, 가장 신기했던 것은 코디네이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병원에 들어가 접수를 하려고 하니 접수대의 직원분은 영어를 거의 못하셨다.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수화기를 건네주는데, 병원 코디네이터를 바꿔주는 것이었다. 이 코디네이터분이 병원으로 와서 접수부터 서류작성, 진료받기 전까지 업무를 도와주었다.
작성해야 할 서류가 꽤 많았는데, 주로 여권정보, 결제정보 등에 관한 것이었다. 서류 작성이 끝나자 본인의 사무실로 데려가 진료비를 먼저 결제했는데, 신기하게도 접수대가 아닌 코디네이터의 사무실 안에서 결제를 했다.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올라갔는데, 여기는 보호자와 같이 갈 수 없었다.
진료 대기실을 얼핏 보면 한국의 일반적인 병원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접수대와 완벽히 분리되어 있어서 그런지 훨씬 차분한 분위기였다. 진료대기실에는 간호사도 거의 없고 환자 대기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대기표가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정보를 비롯해 바코드까지 찍힌 스티커와 대기 번호가 적인 종이까지 두 장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이름을 부르면 들어갔었는데, 외국인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를 비롯해 번호표를 받고 앉아있는 분들이 몇 분 보였다. 순례자들이 몇 명 있을지 궁금했는데, 외지인은 없고 현지에 사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왔다.
진료실에는 코디네이터와 함께 들어갔다. 의사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이셨는데, 스페인어로만 얘기하셨고 코디네이터분이 통역을 해주셨다.
진료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미리 설명한 증상을 코디네이터가 의사에게 알려주고, 의사는 내 팔과 목의 물린 자국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곤 웃으면서 무슨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인 즉 베드버그가 맞다는 것이었다.
아내도 같은 이 층침대에서 잤는데 안 물렸다고 하니 같은 곳에서 잤어도 한 사람만 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도 내 피가 맛있나 보다. 대처법은 뜨거운 물로 빨래를 하거나 햇볕을 쬐이는 것. 산티아고 도착한 첫날 침낭을 버리고 옷을 빨길 잘했다.
그렇게 짧은 진료를 받고 약처방과 함께 나왔다. 마지막으로 코디네이터 사무실로 가서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받았다. 이런 일에 익숙한지 필요한 서류를 알아서 챙겨주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명함까지 넣어주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의 첫 병원 방문이 마무리되었다.
1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만났다. 내 손에는 30만 원이 훌쩍 넘는 영수증과 약 처방전이 들려 있었다.
“베드버그 맞대”
이 말을 하는 내 표정에는 민망함이 묻어 있었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병원에 올 생각도 못하고 모기약만 주야장천 바르고 있었을 텐데. 역시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아내에게 연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며 화해 아닌 화해를 했다. 츄로스를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큰 교훈을 준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2023년 5월 2일 ~ 6월 10일, 총 40일.
돌이켜보니 이 길을 아내와 함께 다 걸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아내에게 처음 산티아고를 걷자고 했을 때는 나도 진심이 아니었다. 회사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장난처럼 얘기했던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내가 대상포진에 걸리고 건강검진에서 심장에 이상이 보이며 산티아고 행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산티아고 행을 결정한 건 딱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는 회사생활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에게 휴직을 해도, 이직을 해도 괜찮다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둘 째는 체력을 키우는 것.
첫 번째 목표는 여행이 끝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두 번째 목표인 체력 올리기는 길을 걷는 와중에도 성공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그런데 이런 목표 외에도 개인적으로 놀란 점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이번 여행은 온전히 아내를 위한 여행이고, 나는 아내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겐 세 번째 산티아고였기 때문에 새로울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여행 초반부터 빗나갔다. 내가 심하게 체할 때 아내의 도움을 크게 받았고, 길을 찾을 때도 아내가 항상 지도를 봤다. 심지어 병원도 아내가 알아봐 준 것이다. 아내를 보살펴줘야 한다는 나의 강박은 그저 자만이었을 뿐이다.
산티아고라는 같은 장소였지만 언제 오느냐, 누구랑 오느냐에 따라 산티아고 길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이번 산티아고 길은 예상 밖의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런 어설픈 계획의 어긋남 속에서 서로 더 의지하게 되었고, 더 친해졌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엄두조차 안 나는 추억이 단단하게 쌓여갔다.
산티아고 길을 끝났지만, 아직 우리의 <80일간의 신혼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절반 조금 넘었을 뿐. 산티아고 길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데, 앞으로 남은 여행을 어떨까? 남은 여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포르투행 기차를 기다렸다.
그동안 <80일간의 신혼여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편을 마무리하고, 곧 하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저는 워드 파일에 글을 쓴 뒤 브런치에 사진과 함께 옮겨 적는 방식을 글을 쓰고 있는데요. 워드 파일을 보니 153페이지가 채워졌습니다. 아마 사진까지 합치면 200페이지가 넘을 것 같네요.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 올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일부러 찾아와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 편을 쓰기 전까지 약 한 달간은 저희가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일정표, 예산, 짐 목록 등 여행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후에는 남은 저희의 일정인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순례기, 마드리드 맛집 탐방,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뽑힌 발렌시아에서 느낀 점, 1박 2일 바르셀로나, 나폴리 피자 끝내기, 터키에서 형 만나기, 그 여정에서 저희 부부가 싸우고 화해한 이야기를 담은 <80일간의 신혼여행> 하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