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고양이. 목발
2021년 8월 1일이 계약 시작이었다. 여유 있게 7월 초 출국으로 날짜를 결정하고 수많은 이민 선배들의 블로그를 참조하여 준비를 시작했다. 해외이주에서 시 비자, 이사, 집 구하기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주재원(한국에 고용계약을 유지하고 다른 나라에 파견) 계약이라서 회사로부터 비자, 해외 이사에 대한 외부 컨설팅 업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업체의 가이드가 있어도 세부 사항은 내가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꽤나 바빴다. 다행히 이전에 글로벌 HR 한 덕분에 워킹비자 관련 행정처리(아포스티유, 공증, 대사관 방문 등)는 익숙한 영역이었다. 당시에는 재미없고 번거로운 업무라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때의 경험 덕을 봤다. 그러나 2021년 초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라 변수가 많았다.
집 구하기
집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독일에서 생활할 월세 집을 알아보는데, 코로나 때문에 국가 간 왕래가 금지되어 룩앤씨(Look & See) 트립을 할 수가 없었다. 룩앤씨는 파견될 국가를 미리 방문해 생활 여건을 확인하고 기반을 미리 준비하는 출장이다. 독일은 원래도 월세 매물이 귀한 나라인데, 집은 빨리 구해야 하는데, 방문하기는 불가능한 상황. 독일 부동산 사이트에서 우리 조건에 맞는 집을 찾은 뒤, 최종 두 곳을 추려서 부동산 컨설턴트한테 두 집에 방문해서 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전망이 마음에 들었던 집을 선택했다. 슈투트가르트 시내가 멋지게 내려다보이는 3층짜리 주택의 2층이었다. 집주인에게 우리 부부의 이력서, 경력증명서, 재산잔고증명 등을 먼저 보낸 뒤, 집주인 부부와 인터뷰를 통과하고 월세 계약을 확정할 수 있었다.
고양이 니모
해외근무를 준비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해? 데리고 가? 아님 남한테 주고 가나? “
당연히 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 고양이 니모도 함께 가야 한다. 니모는 우리 가족이다. 찾아보니, 고양이 동물 검역 서류준비를 대행해 주는 동물병원이 있었다. 가격이 좀 나갔지만, 일단 나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혹시라도 문제 생겨서 니모가 검역장에 남겨지는 등의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확실하게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고양이 건강검진과 몇 차례의 예방접종과 복잡한 서류 작업을 손쉽게 마쳤다. 6킬로 뚱냥이 니모의 체중이 늘지 않도록 사료 양도 조금 줄여나갔다.
해외컨테이너 이사준비
회사에서는 20 FT 컨테이너 운송을 지원받는다. 코로나 때문에 이사비용이 두 배나 비싸졌고, 독일까지의 운송기간도 보통은 3개월이지만 6개월 이상 걸릴 수 있으니, 급히 사용해야 하는 짐은 항공으로 따로 가져가라는 공지를 받았다.
업체에서 짐 양이 얼마나 되는지 미리 와서 체크를 했다. 우리 집에 짐이 너무 많아서 다 넣을 수 없단다. 가구를 빼야 한다. 원목 식탁세트/벤치세트를 두고 가기로 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왔다. 너무 많은 책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 자체를 좋아해서 구매도 많이 한다. 읽지 않아도 일단 마음에 드는 책은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되고, 책 제목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예전 대기업에서 인재개발팀에서 일할 때,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일이 잘 안 풀리면 점심시간이나 퇴근길에 서점에 가서 책 제목을 쭉 둘러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다. 예전에 이사할 때도 포장이사 업체분들이 "여기 집주인은 뭐 하시는 분인데 책이 이렇게 많으시냐 “라고 했었다. 그렇게 사고, 선물 받고 모은 책이 꽤 많은데, 책을 다 싸들고 가자니 컨테이너 공간이 부족했다. 눈물을 머금고, 책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독일로 꼭 가져가야 할 나의 인생책, 중고서점에 팔 책, 지인과 후배들에게 선물할 책. 거실을 가득 채운 책장의 책들을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해외이사가 실감이 났다.
그 외에도 소소한 준비가 있었다. 유럽은 전구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도 아낄 겸 미리 led 조명을 사서 컨테이너로 싸서 보냈다. (이 부분은 나중에 후회했다).
2021년 6월 14일 대망의 컨테이너 포장이삿날. 가져갈 물건은 노란색 포스트잇, 두고 갈 것은 분홍포스트잇으로 구분하고, 유성매직팬으로 표시하여 분리를 해놨다. 업체분들이 오셔서 자잘한 짐은 포장이사처럼 박스에 넣고, 큰 가구들은 큰 골판지를 즉석에서 재단해서 칼로 자르고 쓱쓱 접어가면서 테이핑 했다. 내가 몰랐던 노하우와 기술의 영역이 있었다. 그분들의 스킬에 감탄하며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아파트가 텅 비었다.
아킬레스건 수술
그 후 부모님 댁에서 이불을 빌려와서 요가매트에서 자고 최소한의 가재도구로 생활했다. 출국이 겨우 일주일 남은 2021년 6월 27일 토요일. 친구와 환송회 점심을 먹는데, 급히 전화가 왔다. 남편이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끊어져서 입원했단다. 7월에는 전세 세입자가 들어올 거라서 집을 비워줘야 한다. 부모님 댁 부엌 옆방에서 거동 못하는 남편과 고양이 니모와 단칸방 생활하게 되었다. 세 명이 살기 딱 적합한 사이즈의 집에서 갑자기 다섯 명에 고양이까지.
좁은 공간에서 모두가 답답함을 견디어야 했지만, 나는 부모님의 살뜰한 돌봄에 감사하고 죄송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았으나, 모두의 눈치를 봤다. 남편의 아킬레스건 수술 후 상처부위 소독, 통원 치료할 때마다 아버지가 병원에 차로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려왔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삼시세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식사 후에는 결혼 전에 그랬듯 엄마와 동생과 산책을 갔다. 우리 부모님과 내 동생은 좁은 공간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불편함보다 "원래의 가족"이 함께 했던 나의 결혼 전 생활을 다시 할 수 있다는 반가움을 더 크게 느꼈다. 우리 남편만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로 맺어진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이방인의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 예상치 못한 동거 덕분에 우리 부모님은 고양이의 매력을 이해하게 되었다.
고양이는 정말 영특한 동물인 것이, 니모는 평소에 지능이 높지는 않았지만, 누가 밥 주는 사람인지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부모님 댁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식사준비하는 엄마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아빠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갑다며 꼬리를 들고 다가갔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 보는 내 동생에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최소한의 재활치료만 마치고 8월 19일 출국하기로 했다. 한 비행기당 최대 2마리 애완동물이 탈 수 있는데, 다행히 한자리가 가능했다. 비행기에 목발을 들고 타도 되는지,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양이는 검색대를 어떻게 통과하는지, 15시간 넘는 비행을 니모가 잘 견딜 수 있을지, 출국 전까지 온통 준비와 걱정으로 가득했다. 이민가방 2개, 대형 캐리어 2개에 니모 이동장도 들고 가야 한다. 공항에서 짐을 대신 들어주는 서비스도 따로 예약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하며, 23킬로가 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많이 챙겨가려고 여러 번 확인했다.
"그만하면 됐으니까 그냥 둬." 다 내가 챙기는데, 남편은 내가 조바심을 낸다며 괜히 짜증을 냈다. 내 눈에는 남편이 너무 느긋해 보였다.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면서 참견이다. 부모님이 같이 계셔서, 남편에게 큰소리 내지 않고 꾹 참았다. 이럴 땐 밉다.
출국 당일은 대형 공항택시로 이동했는데, 거동이 힘든 남편 대신 아버지가 짐을 실어주셨다.
"나 다녀올게"
인사를 마치고, 택시 안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눈물을 훔치며 손 흔드는 부모님과 동생이 보였고, 나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