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양현석은 말했다. 누군가 '너의 전 재산을 다 주면 너의 젊음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면 자신은 기꺼이 승낙하겠다고.
얼마 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갔다. 입구에서 벨을 누르자 사회복지사님이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어주셨다. ㄱ자 모양의 요양원의 가운데 넓은 홀에는 커다란 TV와 긴 테이블이 있고 그 오른편에는 원장님 사무실과 의무실이 있다. ㄱ자로 꺾어지는 부분부터 안쪽에는 침실이, 넓은 홀과 연결되는 복도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다. 홀 안에 들어서자마자 똥냄새가 났다.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에 열심히 열중하고 있는 무리도 있고 멍하니 앉아있는 분들도 계셨다. 어떤 할머니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고 당신의 눈동자는 내가 가는 길을 쫓아 이리저리 흔들렸다.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혼자 일어나지 못하시니 누운 채로 눈만 뜨고 알 수 없는 초점으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우리 네 가족은 할머니의 침상을 두고 둘러앉았다. 할머니는 엄마가 먹여주는 과일을 아기새처럼 뻐끔뻐끔 입을 벌려 받아 드셨다. 방을 같이 쓰는 다른 할머니는 괴상한 신음을 주기적으로 내뱉었다. 마치 그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모두들 자기 일에 열중했다. 아빠가 할머니와 되지 않는 소통에 노력하고 있을 때, '만약 여기서 죽으면 어떤 수순으로 요양원을 떠나게 될까. 남일 같지 않은 이별을 바라보면서 남겨진 노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생각했다. 아빠가 내 이름을 꺼내자 자연스럽게 망상 속에서 빠져나왔다.
"우리 딸, 00 회사 취직했어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천천히 하기도 했다가, 크게 하기도 했다가 반복하자 할머니께서 대답하셨다.
꽃이 활짝 피었구나.
그렇다. 나는 견딜만한 비바람을 뚫고 활짝 피어난 꽃이다. 벌과 나비가 아름다운 빛깔과 향에 이끌려 내 곁에 머물고 다른 꽃들과 봄의 생기를 만들어나가는 그런 존재다. 내 앞에 펼쳐진 인생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며 나만의 역사를 써가는 재미도 있고 앞으로 마주할 새로운 변화가 나를 얼마나 흔들어 놓을지 두렵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반면 할머니는 제 역할을 다하고 마감을 기다리는 시든 꽃 같았다. 화려했던 꽃잎은 다 떨어져 나가고 얼른 겨울이 다가와 나의 존재를 거두어달라고 애원하는 꽃이었다. 당신 앞에 새로운 일상이란 없으며 죽음의 행렬 속에서 저 뒤편에 줄을 서서 끝없이 누군가에게 밀리고 있는 삶이었다.
엄마는 가끔 할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다가올 당신과의 이별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오는 눈물 같았다. '나도 나중에 늙어서 저렇게 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엄마는 입버릇처럼 당신이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에 집어넣고 찾아오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 두려움에 누군가는 저물어가는 자신이 싫어 갖은 수로 활짝 핀 꽃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덧칠한 색은 티가 나듯 시들어가는 꽃은 시든다. 그래서 나도 엄마처럼 두렵다. 예쁘게 꾸미고 데이트를 하러 가는 일상도, 열심히 자료 준비해서 멋지게 발표하는 일도 없을 거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설레는 일도 사라질 것이고, 누구에게나 외적으로 매력적이지 않게 변할 것이다. 그때는 어떤 삶의 목표와 행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나이가 들면 완성된 내 역사책으로 다른 이에게 지혜를 베풀 수 있다고 이 글을 마무리하면 참 쉬울 텐데..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는다. 나는 지금 양현석의 전재산 가치 이상의 젊음을 갖고 있는데 이걸 내려놓고 나면 과연 어떤 것이 그것을 보상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