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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Nov 09. 2023

딸이 관찰하는, 결혼 너머의 일상

잠시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다. 매번 한국에 들어올 때도 부모님 댁에서 지내지만, 이번엔 보통 지내는 몇 주가 아닌, 한 달 정도 될 것 같다.


어느 부부가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툭하면 서로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지고 티격태격하신다. 이제 60넘어선 우리 아버지, 그리고 50대 후반인 우리 어머니를 보다 보면 "이것이 과연 결혼이라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엄마아빠의 결혼은 보기 드문 행복한 결혼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2년 전 즈음 휴가를 내서 부모님과 날 잡고 따로따로 아빠와 데이트, 엄마와 데이트 코스를 짜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아주 확실했었기 때문이다. 두 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이유와 이야기를 해주시며 왜 "다시 돌아가도 이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 지금 아는 것을 그때 다 알아도 같은 선택을 할 것 인지 - 말씀해 주셨다.


어쨌든 그런 확신이 있음에도 매일매일 부대끼며 사는 건 역시 힘든 건가 보다. 서로를 피곤해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나로서는 덩달아 피곤해지는데, 어제 내가 쓰는 방에서 책을 읽다 거실에서 부모님의 대화가 들렸다.


아빠가 성경책을 읽다가 다 읽었는지 중얼거림을 멈췄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듯, "에구, 졸려"이랬다. 아마 그러면서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눈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거실에 있었으면 "아빠 졸려~~??" 하며 애교를 조금 떨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엄마가 "졸려?" 이렇게 아빠한테 묻는 게 들렸다.


그 짧은 대화를 듣는 순간, 이런 순간들이 모이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서로와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졸린 것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있지만 굳이 꺼낼 필요도 없는 자신의 "현재 상태"이다. 입 밖으로 굳이 졸리다는 것을 말하는 건, 상대방에게 "지금 내가 이래요 -"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 역시 아주 당연하다는 듯, 그런 아빠에게 다정하게 "졸려?"라고 신경을 써주었다. 


서로 투덜대는 순간들도 많지만, 그만큼 서로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순간들이 많다. 엄마가 피곤해하거나 머리를 아파하면, 아빠도 엄마가 무엇 때문에 그럴까 고민한다. 아빠가 그럴 때도, 엄마는 바로 팬트리를 뒤지며 약을 찾는다. 


서로 칭얼댈 수 있는 일상. 그게 어쩌면 30년이 지나도 서로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결혼의 일상이 아닐까. 칭얼대는 순간 끝에 나를 신경 써주는 다정함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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