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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n 23. 2024

내가 뭐라고...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세상

글을 쓰다 보면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한다.


하나는 설레임과 기대가 가득한 세상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글을 써야겠다고 바로 느낀다. 내겐 종이에 끄적거리든, 이렇게 컴퓨터로 타자를 치든, 글이란 '생각의 정리'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백지를 보며 생각이 어떻게 정리될지 기대도 하고, 생각이 착착 정리가 되며 기록으로 남는 데에 어느 정도의 희열의 느끼며, 나만의 언어로 표현을 한다는데 창작의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며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라는 의미로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아주면 또 다른 소통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 두 가지 행복에 대해 잠깐 언급한 내 두 번째 브런치 글).


나머지 하나는 두려움이나 소심함이 뒤 섞인 세상이다. 보통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다: "내가 뭐라고..." 가끔 나는 누군가 내 브런치를 발견하는 것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아직까지 내 지인들이 '어쩌다'내 브런치를 발견하는 경우는 꽤 드물었고, 그럴 때마다 오히려 따뜻한 메시지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았지만, 내게 글이란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 나는 평소에도 '자신감 넘친다' 혹은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데, 동시에 "진지충"이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하필 나에게 글이라는 것이 이 두 가지가 극대화되는 공간이기도 한데, 이 "자신감"이 가끔 내 글에서 "자만함"처럼 보일까 봐 두려울 때가 가끔 있다. (물론 오히려 이런 식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한국 사회에서 트렌드처럼 일컫는 '자의식과잉'일 수도 있다. 그냥 who cares, '어차피 볼사람만 보고 안볼사람은 안 보고 욕할 사람은 욕한다'라고 생각하며 써야 하는데.)


어쨌든 이런 생각들은 나 스스로에게 "글 쓰면서 느끼는 행복"을 줄 기회를 앗아간다. 최근 몇 달 동안 쓰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는데,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 때문에 미루게 되었다. 내가 로펌 생활을 하면서 들었던 조언들이 엄청 많았는데, 나만 알기 아까워서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과 나눠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조언들에 대한 나름의 생각 정리도 해보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직 1편을 쓰고 다음 편은 계속 미루고 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글쓰기가 예전처럼 잘 되지 않을 때, KICA(한국사내변호사회)에서 열린 신수정 님의 북토크에 참석했다. 신수정 님이 쓰신 <일의 격>은 읽어봤지만, 이번 북토크는 <커넥팅>에 관한 것이었어서 <커넥팅>도 읽고 갔다.


참가하기 전에, 주변에 신수정 님 북토크에 간다고 하니까 누군가 그랬다. "난 그 사람 좀 별로던데" - 뭔가 가르치려는 느낌이 든다는 글들이 많아서 싫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글을 쓰고 그것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더 커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면서도 "쟤가 뭐라고 저런 글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면서 동시에, 사실 이건 최근 링크드인에 아주 열심히 셀프브랜딩/마케팅하듯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하는 생각인 것을 깨달았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자면, 내가 항상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또 아니었다. 어느 누군가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읽게 된 글들은 '역시' 좋아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이 더 고체화된 적이 있고, 어느 후배의 익명 블로그를 어쩌다 찾게 되어서 그 후배의 다채로운 면들을 알게 되면서 생각보다 나와 비슷했던 그 후배와 대학 시절 친해지지 못했던 것에 많이 후회했던 적도 있었다.


결국 내리게 되는 답은... 글을 타인에게 보이는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글들은 나와 결이 맞고, 어떤 글들은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것이다. 내 글도 결국 타인에게 그러지 않을까. 이게 나인데. 내 글을 읽고 생각보다 내가 싫어진 사람들은 '진짜' 나를 언젠가 알게 되었을 때, 싫어졌을 것이고... 내 글을 읽고 생각보다 내가 좋아진 사람들은 내 주변에 남겠지.


북토크에서 나는 이렇게 '타인에게 나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물어보았다. (헉 그리고 방금 링크드인에 들어가 보니 18시간 전에 올리신 글에 나온, '얼마 전에 유사한 질문을 한 분'이 나다. 어떻게 보면 언짢을수도 있었던 질문이었는데 젠틀하게 받아주셨다.) 신수정 님은 자신에 대한 악플과 악평은 다 지워버리거나 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상처를 받는 부분이 있는데도 왜 글을 계속 쓰는지 말하셨다. 글을 쓰는 삶,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삶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좋은 인연들과 좋은 기회들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하셨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6월, 우리는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나 요즘 이런 생각하는데 나랑 비슷한 생각하는 분?'이라고 한번 던져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정말 많아졌다. 가장 잘 알려진 플랫폼이 인스타그램, X(f/k/a Twitter), 페이스북, 링크드인, (한국에서는)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이다. 아마 내가 모르고 있는 플랫폼도 정말 많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아직도 내가 익명으로 브런치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지만, 언젠가 용기를 얻어서 소통의 세상을 넓혀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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