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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그 문을 닫지 말아요

by 민트아트

이번 주 볼 작품입니다.


WilliamPaxton_LeavingTheStudio_1921.jpg


그림을 관찰하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나요?


이 그림의 제목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떠오른 질문 중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세요.




그림을 보며 든 생각


옛날 어느 드라마에서 손현주 배우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히트를 쳐서 음반으로 내기까지 했던 노래인데 이 그림을 보면서 그 노래 가사가 불현듯 생각났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여

처음 본 그때부터 그대의 포로가 되었어요'


예쁜 콧날, 선한 눈망울, 귀여운 모자까지.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저 문이 닫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눈을 맞추는 소녀. 소녀의 따뜻한 눈빛에 마음이 녹아내려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검은 벨벳 소재의 옷은 가서 만지고 싶을 정도로 그림 전체 분위기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다. 옷의 검은빛은 어두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 밖의 노란 벽지와 만나 소녀의 얼굴에 시선이 머물 수 있도록 명시성을 높여준다. 뽀얀 피부, 검정, 노랑, 빨강의 포인트까지 화가의 영리한 색채 배치를 읽을 수 있다. 나가려고 방문을 연 주인공은 뒤돌아보며 다양한 감정이 내포된 눈빛을 보낸다. "저 갈 건데 할 말은 더 없나요."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있어요. 보고 싶을 거예요."라며 아쉬운 작별을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문은 결국 닫히고 만다.



그림을 보며 느껴진 단어


아련함, 추억, 첫사랑, 부드러움, 포근함, 소녀, 이야기, 비밀



내가 지은 제목


헤어짐의 아쉬움



떠오르는 질문


- 그녀는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 바라보고 있는 인물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 손에는 무슨 책을 들었을까?

- 책을 빌리러 왔다가 가는 모습일까?

- 방문을 닫고 바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 소녀의 나이는 몇 살일까?

- 지금 소녀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 실내에 들어왔는데 모자를 벗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문 밖의 벽은 실제 노란색이었을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 작품 정보 >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 <스튜디오를 떠나며 >, 1921년, 캔버스에 유채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1869-1941)



미국 보스턴 학파의 대표적 화가였던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은 1869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났습니다. 18세에 카울스 미술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시작했지요. 파리로 유학을 떠나 에콜 데 보자르에서 장 레옹 제롬에게 그림을 배우고 돌아온 팩스턴은 제자였던 엘리자베스 오키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평생 그를 지지하며 그의 작품에 모델로 자주 등장했어요. 1906년부터 1913년까지 보스턴 미술관 부속학교에서 교사로서 일한 경력도 있으며 여러 예술가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초상화로 유명해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인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메리힐 미술관은 그의 예술성에 대해 '살결과 직물에서 빛과 세부 묘사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종종 여성의 이상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어요. 팩스턴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가 사용하던 광학 시스템에 매료되어 한 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14년 보스턴 예술가 길드를 공동 설립했으며, 1928년 미국국립디자인 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1941년 자택 거실에서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니 죽기 전까지 붓을 놓친 않은 그의 열정에 저절로 존경심이 느껴집니다.


팩스턴이 페르메이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설명을 듣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어쩌면 두 소녀의 눈망울에서 비슷한 감정이 떠오르는 것도 같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조금 더 수동적, 정적인 모습이라는 것. 그림 안에 갇힌 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스튜디오를 떠나며>의 소녀는 문을 열고 나간다는 상징적인 표현과 자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세에서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 나간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팩스턴의 그림은 14년 전 김태희의 휴대전화 광고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뒤돌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과 자태, 눈빛이 너무 예뻐서 설렜던 강렬한 기억이 소환되었지요. 두 주인공의 자세와 옷 색깔은 비슷하나 눈빛은 매우 다릅니다. 김태희가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당당하고 매력적인 눈빛을 갖췄다면 그림 속 소녀의 시선은 마음을 아련하게 만듭니다. 내가 남자였다면 첫사랑의 그녀가 생각날 정도로. 사진과 다른 그림의 깊은 감성과 울림, 팩스턴의 그림 속 여성과 광고 속 여성이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봐도 좋겠습니다.


1824px-1665_Girl_with_a_Pearl_Earrin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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