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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Jun 16. 2024

그녀 뒷모습으로 진실을 말하다.

04. 명화하브루타_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_뒷모습 시리즈 2

네 번째 만남




'약간은 어긋난 발,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여인, 어두운 실내와는 대조적으로 맑고 따뜻한 느낌의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뭇잎 색을 봤을 때는 새싹이 막 돋아나는 초봄이 아닌가 싶다. 좁은 창 위의 통창은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천장을 상상하게 만들고 양쪽 기둥의 세로선이 여인을 옥죄어 오는 느낌으로 긴 화면을 강조하고 있다. 단정하게 올린 머리, 벨벳 소재로 보이는 초록 드레스, 분홍빛이 도는 신발이 부유한 집안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수직, 수평의 직선이 엄숙한 규율을 중시하는 귀족의 가풍을 상징하는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진다. 밖에는 배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돛대가 보여 이곳은 강 가까이에 있는 집임을 알 수 있다. 배는 그녀가 창가에 나와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 키워드 같기도 하다. 집의 규모와 꾸민 차림새에 비해 여인은 뭔가 위축된 느낌이 들고, 바르지 않은 자세에서 약간은 불안정한 심리도 읽힌다. 이 답답하고 어두운 실내에 있는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강을 지나가는 '배'가 아닐는지.'



명화 하브루타 참여자 : A, B, C (교사)


1.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그리움, 왼쪽으로 기울어짐, 물, 돛, 배, 향수병, 삭막함, 그리움, 열망, 기다림, 드러내고 싶음, 목조건물, 사색, 답답함. 감옥, 수도원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 향수병, 우리 님은 언제 오시려나


3. 질문하기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을까?

밖에 무엇이 있길래 내다보고 있을까?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무 창문은 더 열 수 없는 구조일까?

집 밖은 호수일까? 강일까?

여인은 울고 있는 것일까?

졸고 있는 것일까?

여인의 손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여인은 책을 읽고 있을까?

왜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을까?

창문 밖 뾰족한 것은 무엇일까?


4. 생각 나누기


Q1. 왜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을까?


A: 사람의 일반적인 선 자세는 발을 약간 벌리고 안정적으로 서 있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여인은 발이 약간 어긋난 상태로 모여 있어요. 밖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상황이라 자신도 모르게 몸이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B: 저는 자유로움 속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로 보여요. 이렇게 있으려면 사실은 좀 힘을 줘야 하기에 뭔가 흥미로운 것을 보려고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이런 자세가 된 것이 아닐까요?


C: 저는 돛대가 약간 오른쪽에 있잖아요. 그래서 이 배가 오른쪽에서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배에 누가 타 있는 거야. 그럼, 그 오른쪽에서 오는 배를 보려면 몸이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보이지 않겠는냐는 과학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A: 와. 그 말이 정말 일리가 있네요.



Q2.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B: 저는 아까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표정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좋아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기다릴 때의 표정은 약간 모나리자 입 있잖아요. 그러니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그런 표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A: 저도 이것이 하브루타의 장점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처음 가지고 있던 그림에 대한 생각이 타인의 의견을 들으면서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밖에 배가 지나가고 있고, 누가 오는지 궁금해서 몸을 기울이는 상태라면 호기심이 어린 표정이 아닐지 생각해 봤어요.


 C: 처음에 저는 이게 배인지 진짜 몰랐거든요. 그런데 배라고 아는 순간 스토리가 달라지는 거예요. 저도 돛대가 이쪽에 있고 정박하고 있지 않은 이상은 지나가는 거니까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아요.

 
 Q3. 무엇을 보고 있을까?


B: 저는 처음에 한가로운 오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창문을 열어서 환기도 시킬 겸 밖 풍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노란 가을 숲이 보이는 보통 공원 같잖아요. 약간. 그런데 배라고 생각하고 여기가 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달라지네요.


A: 부끄럽지만, 처음에 이 그림을 볼 때 저도 돛대를 못 봤어요. 제가 그림을 대충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하브루타를 시작하면서 질문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때부터 꼼꼼히 하나하나 다 살펴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우울한 느낌은 조금 사라졌는데 이 여인이 이곳에 갇혀있는 느낌은 계속 있어요. 배에서 무엇을 봤다고 하더라도 맞이하러 나갈 수 없고 어떤 세계에 갇혀있는 느낌이에요.


 

5. 작품의 메시지
 

B: 저는 이 그림이 약간 오래된 걸로 파악돼서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어둡게 표현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둡다는 게 이 여인이 갇혀 있어서라기보다는 뭔가 정갈한 느낌이에요. 머리도 올렸고, 옷도 엘레강스하잖아요. 신발도 고급스럽고요. 그냥 한가롭고 자유로운데 배가 지나가니까 호기심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여인의 밝은 이미지를 그린 것으로 보여요.
 

C: 저도 이 여인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고, 마침 배가 딱 지나가니까 거기에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을까 하면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상상해 봤으면 좋겠어서 화가가 그녀의 뒷모습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다리는 상황은 똑같을 수 있지만 표정은 좀 다를 수 있으니까요.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 작품 정보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창가의 여인>, 1822년 캔버스에 유채, 45X32.7cm, 베를린 구국립 미술관


노년의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출처: 위키백과


프리드리히는 30대에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그림 작업에 매진하느라 44세가 되어서야 열아홉 살 연하의 카롤린 보머와 결혼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해 질 무렵의 여인>, 48세에는 <창가의 여인>이라는 작품으로 아내의 뒷모습을 남겼다. 결혼 초 아내를 그린 그림이 대자연 속에서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신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했다면, 4년 뒤의 아내의 모습은 어두운 실내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린 조금은 위축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Woman in front of Setting Sun >, 1818년 캔버스에 유채, 22X30cm, 에센 폴크방 미술관


교직원 동아리 선생님들과 첫 하브루타를 할 때 어떤 그림으로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고른 2개의 작품이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와 <창가의 여인>이었다. 화가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과 아내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평생 뒷모습에 천착한 화가에 대한 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브루타가 다 끝나고 작품에 대한 정보를 말씀드릴 때 두 그림의 주인공이 부부라고 말씀드리자 매우 흥미로워하셨다. 나도 사실 이번 하브루타를 준비하면서 조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화가를 남편으로 둔 어린 아내의 외로움, 결혼을 한 이후에도 가족보다는 그림을 더 사랑한 남편으로부터 느끼는 소외감, 이런 것들이 작품의 정보를 알고 나서야 서로 연결되어 보였다. 프리드리히는 이 그림을 왜 그렸을까? 그리고 아내의 뒷모습에 무엇을 담아내려고 했을까? 미안함, 안쓰러움,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아내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고독한 모습을 발견했던 것일까?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을 선택한 화가는 어떻게 보면 비겁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림 속 주인공의 표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공의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뒷모습을 그림으로써, 감상자의 몫으로 이 모든 진실을 읽어내기를 남겨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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