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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Jun 23. 2024

쌍무지개가 전해주는 위로와 축복

05. 명화하브루타_존 에버렛 밀레이

다섯 번째 만남


'비가 지나간 후 깨끗해진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다. 자주 만나기 어려운 쌍무지개는 낡은 옷을 입고 있는 가난한 자매를 따뜻한 햇살과 함께 비춰주고 있다. 소녀의 목에 달린 종이에는 '시각장애인을 불쌍히 여겨주세요(Pity the blind)'는 글이 새겨져 있어 이 소녀가 눈이 보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소녀의 무릎 위에 있는 아코디언은 돈을 벌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자매 뒤에는 따뜻한 노란빛의 들판이 펼쳐져 있고 멀리 풀을 뜯고 있는 소, 말, 염소 등이 평화롭게 방목되어 있다. 언덕 위에는 마을이 보이는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다. 두 소녀의 금발 머리는 황금빛 들판이 반사된 듯 노랗게 물들었다. 눈먼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귀와 코로 주변 공기와 자연의 흐름을 예민한 감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 쌍무지개를 봤을 법한 동생은 언니에게 주변 풍경에 대해 재잘재잘 설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갈색 숄에 살포시 내려앉은 나비와 소녀가 붙잡고 있는 꽃은 구원과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브루타 참여자 : 중3딸, 엄마, 아빠


1.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쌍무지개, 따뜻함, 편안함, 인정, 맑음, 행복, 아코디언, 소녀들, 무지개, 초록, 자연, 평야, 까마귀, 소, 염소, 책, 아코디언, 노랑머리, 허름한 옷, 누빈 치마, 붉은 입술, 비둘기, 황금빛 들판, 방목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무지개, 쌍무지개 뜨는 언덕, 가난한 금발머리 자매의 일광욕


3. 질문하기

아코디언을 왜 가지고 있을까?

나비가 소녀에게 내려앉은 것을 그린 이유가 있을까?

눈을 왜 감고 있을까?

손을 왜 잡고 있을까?

왜 쌍무지개를 그렸을까?

소녀 옆에 핀 꽃은 무슨 꽃일까?

언니는 아코디언 연주자이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을 묘사한 것일까?

동생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냥 무지개가 아니고 쌍무지개를 그린 이유가 있을까?

아코디언은 누가 연주하는 것일까?

이들은 부모가 없는 고아일까?

멀리 있는 황토색 건물 무엇일까?

동생을 숄 안에 배치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4. 생각 나누기


Q1. 이들은 부모가 없는 고아일까?


엄마: 아코디언을 가지고 있는 것이 뭔가 구걸을 할 때 연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둘이 돈을 벌어야지 그날 하루를 먹고살 수 있는 고아인 거죠. 옷만 봐도 부모가 있다면 옷을 이렇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책임감 있는 부모라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악기를 연주해서 동냥받은 돈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닐까 해요. 눈먼 소녀의 머리에 두른 숄이 동생까지 폭 안아주고 있잖아요. 숄은 부모의 역할로서 이 불쌍한 자매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굳이 이렇게 맑은 날씨에 이렇게까지 뭘 뒤집어써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숄을 상징적인 의미로 생각해 봤습니다.


아빠: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부모가 있었어도 가난한 가정이면 헌 옷을 옛날에 기어입기도 하고, 찢어진 옷 그대로 입고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가난한 가정의 자매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부모가 찢어지게 가난하면 애들을 동냥을 내보낼 수도 있죠. 약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Q2: 무지개를 왜 그렸을까?


딸: 처음에는 무지개가 무슨 메시지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리 불행한 사람이라도 무지개가 보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를 주는 것 같아요. 그것을 무지개로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 작가 의도를 생각해 보면 딱 자매만 봤을 때는 힘들어 보이잖아. 가난해 보이고 힘든 삶에 지쳤지만 무지개가 떠있는 잠깐 동안 분위기는 밝고, 맑고, 평온하고, 화창하네요. 무지개도 두 개라는 것은 그만큼 과장해서 더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자매의 불행을 더 부각하기 위해 더 대조적인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아빠 생각도 공감이 많이 돼요. 하지만 저는 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실은 무지개가 없어도 되고 딸 말처럼 하나만 그려도 되는데 왜 굳이 쌍무지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쌍무지개가 나오는 것이 확률적으로 흔하지 않은 일인 것 같거든요. 화가는 이 날을 특별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이런 힘들고 지친 자매에게 이들 구원과 축복을 내려주는 어떤 요소로서 쌍무지개를 그리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너희들은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말해주는 어떤 선물 같은 요소인 거죠.


Q3. 동생을 숄 안에 배치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아빠: 이 동생이 궁금한 것을 이렇게 보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두려워서 살짝 숄을 잡고 조심스럽게 뒤를 보고 있는 것인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는데 저는 동생이 지금 두려운 것 같아요. 옆얼굴로 봐서는 즐거운 것보다 두려워 보여요. 궁금했으면 숄을 걷어치우고 이렇게 확실하게 볼 것 같은데 말이죠. 아까도 얘기했지만은 이 자매는 행복한 삶을 산적이 없는 것 같아. 그동안 살면서 아무리 주변이 밝은 분위기여도 얘네들한테는 적응이 안 되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도 두려워서 그런 것처럼 보여요.


엄마: 아빠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도 생각이 드네요. 언니가 시각 장애인이라 걸어갈 때는 꼭 손을 잡아야 하지만 앉아 있을 때는 손을 놓아도 되는데  그런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하브루타가 다양하게 그림을 해석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딸: 저는 두렵다기보다는 호기심 같은 걸로 보였는데 둘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은 그냥 사이가 돈독해서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숄 안에서 사이좋게 머리를 이렇게 기대고 앉아 있다가 새소리가 들린 거예요. 그래서 새소리를 듣고 궁금해서 동생만 이렇게 소리 나는 쪽을 갑자기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순간 무지개도 함께 발견한 거죠.


엄마: 그러네. 새를 본 거구나. 위치상으로 그렇게도 보이네. 그래 언니도 소리는 들렸겠지만 어차피 몸을 돌려도 보이지는 않으니. 아코디언도 무릎에 있어 몸을 돌리기 쉽지 않았을 테고.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5. 작품의 메시지


엄마: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자매, 끈끈한 자매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딸: 저는 비가 개인 날 휴식을 즐기는 느낌을 표현한 것 같아요.


아빠: 힘든 소녀들에게도 삶을 즐기는 평온한 시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쉬고 있는 자연 속의 공간을 표현한 것 같아요.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작품 정보 >

존 에버렛 밀레이, <눈먼 소녀>,1856년, 캔버스에 유채, 82.6X62.2.8cm, 영국 버밍엄시티미술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


존 에버렛 밀레이는 영국 사우샘프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1살의 나이로 왕립 미술아카데미 부설 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할 정도로 그림의 천재였다. 그는 1848년 이곳에서 만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월리엄 홀먼 헌트 등과 함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를 결성하였다. 당시 최고 존경의 대상이었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고 라파엘 이전(pre) 시대의 미술, 즉 자연관찰과 세부 묘사에 충실한 중세 고딕 및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갈 것을 주창하며 그룹의 명칭에 그 뜻을 담았다. 그들은 옛 거장의 틀에 박힌 양식을 모방하는 왕립학교에서 공식을 배우는 대신 자연으로 나가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렸다.


 <눈먼 소녀>는 1854년 여름 밀레이가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마주한 실제 자매를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치밀한 세부 묘사와 화려한 색채, 시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밀레이의 작품 특징이 이 그림에서도 드러난다. 일부 비평가들은 무지개를 성경 속에 나오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그림은 처음 전시되었을 때 쌍무지개 중 바깥쪽 무지개 색의 순서가 뒤바뀌어야 한다는 과학적 지식을 지적받아 변경하여 다시 그렸다는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밀레이는 그림의 주제로 사회적 문제인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의 방랑을 표현하여 감상자들로부터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했다. 이 작품은 1857년 리버풀 아카데미상을 받았으며, 밀레이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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