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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Jul 07. 2024

여인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우물가 이야기

06. 우물가_김홍도

여섯 번째 만남


'우물가에 세 명의 여인이 모여 물을 긷고 있다. 그때 앞섶을 풀어헤친 한 사내가 다가와 제일 예쁘고 어린 여인에게 물을 달라며 수작을 부린다. 갓을 소지하고 *철릭을 입은 것으로 보아 무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젊은 여인은 두레박에 물을 떠서 건네주지만 차마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부탁한 사내의 행동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나이가 지긋한 여인 한 명은 이 광경을 보기 민망해 자리를 떴지만, 함께 가려는 여인을 기다리는 것인지, 사내를 관찰하는 것인지 바로 가지 못하고 뒤에 서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또 한 명의 여인은 어색한 상황을 피해 물동이에 물이 가득 찼음에도 계속 물을 뜨는 시늉을 하고 있다. 사내를 표현한 *중묵(淡墨)과 곡선 위주의 흐늘거리는 선묘와 달리 건너편 여인을 표현한 농묵(濃墨)의 선은 힘이 있다. 생활력이 강한 여인과 조금은 흐트러진 무관 사내의 모습을 먹선의 종류와 농담(濃淡)을 달리해 대조적으로 표현해 강약의 리듬을 줌으로써 화면을 경쾌하게 만든다.'


*중묵: 농묵과 담묵 사이 중간 정도의 먹빛

*농묵: 짙은 먹색의 표현기법

*철릭: 관복() 가운데 하나로, 고려 중기부터 조선말까지 무사들이 입었던 옷


하브루타 참여자 : 중3딸, 엄마, 아빠


1.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더위, 우물, 갈증, 물, 일상, 갓, 가슴, 두레박, 물동이, 낮술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우물가, 우물가 이야기, 행복한 여름


3. 질문하기


왜 남자는 게걸스럽게 물을 마실까?

뭘 했길래 이렇게 더워하는 걸까?

물 길어 올리는데 힘들지 않을까?

왜 여자들만 물을 길으러 온 것일까?

우물의 돌담이 너무 낮지 않은가?

남자가 갓을 푼 것을 보면 낮술에 취한 것일까?

왜 물을 주는 여인은 가슴을 드러냈는가?

개인 두레박을 가지고 다닌 이유는?

가운데 있는 여인의 치마 색만 파란색으로 칠한 이유는 주인공임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까?

물동이의 형태가 다른데 나무 물동이는 물이 새지 않을까?

남자들은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나?

이 남자의 신분은?

물동이는 얼마나 무거울까?

그림의 주제는 여인의 질투일까?



4. 생각 나누기


Q1. 왜 여자들만 물을 길으러 왔을까?


엄마: 저는 왠지 남자와 여자의 일이 나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기와 이기'나 '타작' 등의 그림에는 남자들만 나오거든요. 좀 더 힘든 일은 남자가 하고 물을 길어 오는 것 정도는 여자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시대의 어떤 규칙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남녀를 차별한다기보다 남자와 여자의 할 일이 따로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딸: 그래도 전 남자가 물을 길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 아프리카에서도 물이 없어서 먼 곳까지 걸어가 물을 길어오잖아요. 거긴 어린애들도, 남자들도 같이 가요.


엄마: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하지만 시대가 다르잖아요. 아프리카는 물이 너무 멀리 있어서 엄청나게 걸어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 그림 속의 우물은 가까운 공동 우물이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빠: 실제로 이 시대에 안 살아봐서 확실히 여자만 물을 길었다고 볼 수도 없어요. 남자도 물을 길었는데 김홍도가 그림을 그릴 때 남자가 없었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엄마: 맞아 맞아. 우리가 이 그림 하나 가지고 이 시대에 관해 확대하여 해석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으니까요. 예리하십니다.


Q2. 남자들은 옷을 벗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나?


엄마: 아빠가 술에 취한 것 같다고 말하고 난 뒤로는 저도 설득되어서 자꾸 그쪽 방향으로 가네요. 그런데 아무리 한잔해도 양반은 이렇게 옷을 풀어헤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양반을 돈 주고 샀거나 양반인 척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봤어요.


딸: 저도 처음에서는 더워서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양반이니까 뭔가 힘든 일도 안 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아빠 말씀 듣고 나니까 술 마셨다는 것이 딱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 보통 양반 같은 경우는 어찌 됐든 체통을 지키려고 하는데 이 남자는 예쁜 여자에게 추파를 던져보려고 오버 액션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Q3. 뒤에 서 있는 여인은 물을 길어 오는 것일까?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아빠: 이 아줌마는 이 예쁜 여인의 엄마 같아요. 딸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가지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아니면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 같아요. 


엄마: 저는 어찌 보면 이 여인과 이 남자가 부부이거나 이 남자를 좋아하는 관계인 것 같아요. 물을 다 길었으니, 집에 가면 되는데, 가지 않고 여기 서 있어요. 자기한테 물 달라고 안 하고 예쁜 여인한테 물을 달라고 하고 거기 계속 서 있으니까, 신경이 쓰이는 거죠. 삼각관계가 아닐까요?


딸: 이 아줌마는 엑스트라예요. 위쪽이 없으면 공간이 너무 비어 보여서. 구도상으로 들어간. 몸이 그림 밖의 방향 쪽으로 틀고 있어서 그쪽으로 길이 나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상황에 관심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요. 


딸: 두 여인은 가슴이 안 보이는데 이 젊은 여자만 가슴이 보이는 이유도 궁금해요.  


엄마: 그러게. 김홍도가 실제 보고 그린 그림이니까 상상해서 그렸다기보다는, 이 당시 이렇게 속살을 진짜로 드러낸 것이 맞는 것 같은데. 저고리 동정도 저고리 길이도 두 여인 것에 비해서 짧아 보여요. 


아빠: 다른 여인들과 뭔가 신분이 조금 달라 보여요. 밑에 치마도 푸른색 계열이고 저고리도 일반 하얀색은 아니야. 


5. 작품의 메시지


엄마: 하나의 그림을 가지고 세 명이 이야기 나누며 작품에 대해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전 사실 수업 시간에 이 그림을 소개하고 보기도 여러 번 봤지만, 여자가 가슴을 드러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김홍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작품의 메시지는 이 당시 서민들의 일상생활 중 한순간을 사진으로 찍은 듯 우물가의 사랑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해요.


딸: 서양의 명화보다는 우리 그림이라서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양반의 이중성을 풍자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점잖은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는 양반의 모습이요.


아빠: 저는 공동 우물에 불순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뚜껑이 있고 공동 두레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여인이 돌 위에 올라가 있고 개인 두레박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 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신분을 넘는 사랑이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작품 정보 >

《단원풍속화첩》 중 <우물가>, 김홍도,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7.0 × 22.7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김홍도 자화상〉 18세기, 43×27.5㎝, 평양조선미술박물관


김홍도(金弘道, 1745년~1806년?)는 영·정조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궁중 화원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29세 때 영조의 어진을 그렸다.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았던 그는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장르의 그림을 잘 그렸지만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는 또한, 음악가, 서예가이며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조희룡은 『호산외사』에서 

"(김홍도는) 풍채가 아름답고 마음 씀이 크고 넓어서 작은 일에 구속됨이 없으니, 사람들은 신선 같은 사람”이라 기록하고 있어 그의 인품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우물가>는 《단원풍속화첩》에 들어있는 스물다섯 점의 그림 중 하나이다. 

강세황은 이 화첩에 대해

 "부녀자와 어린아이도 한번 화권을 펼치면 모두 턱이 빠지게 웃으니, 고금의 화가 중에 없던 일이다."라고 평하고 있어 조선시대 김홍도의 풍속화첩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김홍도의 그림은 오늘날로 치면 핫동영상만큼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그림, 특히 풍속화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물가 이야기를 덧붙여 보겠다.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 씨,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 씨는 모두 우물가에서 물 한 바가지의 인연으로 맺어진 커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서 건넸다는 내용까지 똑같아 패러디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김홍도의 <우물가> 또한 이런 사랑의 결실을 맺는 장소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최종수 토지주택 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데일리에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 우물과 관련된 여인들의 버거움을 수치상으로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신문에 나온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물동이 크기는 오늘날 기준으로 18ℓ 정도이고, 물동이 무게까지 합치면 20kg이 훌쩍 넘었을 겁니다. 사무실의 20kg짜리 생수통을 갈아 끼우는 것도 만만치 않은 것에 비춰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머리에 이고 다녔던 물동이는 고달픈 삶의 무게만큼이나 버거웠을 듯합니다.

어렵사리 물 한 동이를 길어 와도 20ℓ가 채 안 되는 물은 대가족이 쓰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동이를 이고 우물을 왕복하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1인당 최소한 하루에 20ℓ 이상의 물이 필요한데, 우물을 사용하던 시대의 평균 가족 수를 7명이라고 가정하면 한 집에서 매일 필요한 물은 140ℓ나 됩니다. 물 일곱 동이는 족히 필요하고 이 물을 길어오는 역할은 오롯이 여자들 몫이었습니다. 



김홍도는 왕의 어진, 궁중의 기록화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삶 속 현장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산수, 화조, 도석, 불화 등 신분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엄청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와 서예, 그림, 음악을 가까이하고 즐길 줄 아는 진정 위대한 종합 예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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