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타스 Dec 18. 2019

[공황장애] 신체증상, 비현실감.

현실이 수조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비현실감을 자각한 것은 공황이 심해졌던 그 초기 즈음이었다. (구)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는데, 늘 걷던 곳인데 뭔가 ‘이상했’다. 이 추상적인 기분을 말로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난 분명 깨어있고, 이게 현실임을 알고 있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 비누를 손에 쥐었는데 그 비누의 촉감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그걸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 모른다. 세상이 나 빼고 그대로인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붕 떠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소설 속 한 구절을 빌리자면, 모든 일이 수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얼마나 어색하고 생경하고 표현하기 어려웠으면, ‘같았다’라는 말 외에는 맺을 말이 없다).


“모든 일이 수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


행복, 사랑, 기쁨 등의 긍정적인 감정에는 쉽게도 무뎌지건만 불안에는 참 무뎌지지가 않았다. 뭐, 아주 조금 무뎌지기는 한다. 시간이 배로 들고 고통스러워 그렇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방 안의 구조물들이 덜 생경하게 느껴지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좁은 공간에서나 가능했고, 거실로 나가는 순간, 문을 열고 하늘과 풍경이 보이는 순간, 나는 다시 이 어색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태어날 때부터 당연했던 일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아 졌을 때의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3살쯤 되는 아이를 보면서도 부러웠다. 저 아이에게는 이 현실이 온몸의 감각으로 다가오겠구나. 나는 내 몸 주변에 무언가 둘러진 것 같아서, 내 감촉과 시선이 닿는 곳들마다 허망했다.


뇌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 아니니, 하는 지나가는 말에도 가시가 박혔다. 내가 정말 뇌에 문제가 생긴 건가. 온 감각이 어색한데 정신에 큰 이상이 생겼나 보다 싶었다. 점점 내가 나를 믿지 못했다. 혹시 의사가 약에 이상한 걸 탄 게 아닐까. 치료하는 체하면서 나를 실험체로 쓰는 게 아닌가. 난 사실 트루먼쇼의 주인공이어서, 이상한 약을 먹이고 사람들이 그걸 깔깔대고 지켜보는 게 아닐까. 미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무언가에 확신이 없으면, 끊임없이 내 뇌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되풀이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나 미치고 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손가락을 꼭 쥐어서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는 감각을 느껴보세요.” 내가 비현실감으로 지칠 때 심리상담소를 찾아가 들은 말이었다(매번 나 혼자 떠들기만 하고, 별 방법을 제시받지 못했음에도 1회기인 1시간마다 9만 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발바닥을 땅에 대고 천천히 앞 뒤로 그라운딩하듯 왔다 갔다 해보세요.” 손톱이 손바닥에 닿도록, 발바닥이 땅에 닿도록. 내가 허공에 붕 뜨지 않게 지속적으로 따라 했다. 사실 큰 효과는 없었다. 내가 현실에 있다는 안정감은, 내가 스스로 현실감을 느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걷는 걸음마다 땅에 닿지 않고, 뻗는 손길마다 맞닿아있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될 때마다, 내가 이 세상에 아직 건재함을 절실하게 느끼기 위해 온 몸에 힘을 꼭 주었다. 그렇게 하루를 몸에 힘을 꼭 준 채로 지내고 나서는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잠에 들었다. 불안으로 잠 못 들었던 밤들보단 나았다고 해야 하나.


운동을 미친 듯이 하면 좀 나아질까 봐 줄넘기 이천 번, 복싱 연습 그리고 크로스핏까지. 하루 2시간씩 매일 운동하고 나왔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이 끔찍한 감각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쉬이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몸만 튼튼하고, 정신은 어디다 팔아먹은 채로 돌아다녔다. 낯익은 풍경에 낯선 감각들.


“내가 이 세상에 아직 건재함을 절실하게 느끼기 위해 온 몸에 힘을 꼭 주었다.”


욕을 정말 많이 했다. 그래,  죽여라. 비현실감이 오든지 말든지. 오면 니가 어쩔 건데. 이런다고 내가   같냐. 스스로 키운 불안이었으면서 누구에게 주먹을 휘두른 건진 모르겠지만 죽어라고 분노했다.  때문에 나는  당연하던 능력에 한계치를 두게 되었고, 남들 앞에 서서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긴커녕 엘리베이터도 타기 어렵단 말이다. 한참을 화를 내고 울었는데  화가 나에게 돌아왔다. 이유는 당연했다. 불안도 안정도 모두 나였기 때문에.


이런 나를 내가 안아줄  있을까. 화와 원망으로 범벅이 되어서는 무슨. 그래도  팔을 들어  반대쪽 어깨를 잡았다. 다른 팔도 들어   안았다. 뒤늦게  사실이지만 이렇게 심장을 기준으로 나를  안아주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근데 그땐 그런   몰랐다. 그냥 그래야   같아서 안았지. 근데 그렇게 안았을   느낌만큼은 생생했다. 마치  순간에 비현실감이 달아난 것처럼.




베리타스

인스타그램: @record_of_panic_disorder

http://instagram.com/record_of_panic_disorder

매거진의 이전글 [공황장애] 신체증상, 어지럼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