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수조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비현실감을 자각한 것은 공황이 심해졌던 그 초기 즈음이었다. (구)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는데, 늘 걷던 곳인데 뭔가 ‘이상했’다. 이 추상적인 기분을 말로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난 분명 깨어있고, 이게 현실임을 알고 있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 비누를 손에 쥐었는데 그 비누의 촉감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그걸 바라보는 내 시선이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 모른다. 세상이 나 빼고 그대로인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붕 떠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소설 속 한 구절을 빌리자면, 모든 일이 수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얼마나 어색하고 생경하고 표현하기 어려웠으면, ‘같았다’라는 말 외에는 맺을 말이 없다).
“모든 일이 수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
행복, 사랑, 기쁨 등의 긍정적인 감정에는 쉽게도 무뎌지건만 불안에는 참 무뎌지지가 않았다. 뭐, 아주 조금 무뎌지기는 한다. 시간이 배로 들고 고통스러워 그렇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방 안의 구조물들이 덜 생경하게 느껴지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좁은 공간에서나 가능했고, 거실로 나가는 순간, 문을 열고 하늘과 풍경이 보이는 순간, 나는 다시 이 어색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태어날 때부터 당연했던 일들이 갑자기 당연하지 않아 졌을 때의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3살쯤 되는 아이를 보면서도 부러웠다. 저 아이에게는 이 현실이 온몸의 감각으로 다가오겠구나. 나는 내 몸 주변에 무언가 둘러진 것 같아서, 내 감촉과 시선이 닿는 곳들마다 허망했다.
뇌 수술을 받아야 하는 병 아니니, 하는 지나가는 말에도 가시가 박혔다. 내가 정말 뇌에 문제가 생긴 건가. 온 감각이 어색한데 정신에 큰 이상이 생겼나 보다 싶었다. 점점 내가 나를 믿지 못했다. 혹시 의사가 약에 이상한 걸 탄 게 아닐까. 치료하는 체하면서 나를 실험체로 쓰는 게 아닌가. 난 사실 트루먼쇼의 주인공이어서, 이상한 약을 먹이고 사람들이 그걸 깔깔대고 지켜보는 게 아닐까. 미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무언가에 확신이 없으면, 끊임없이 내 뇌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되풀이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나 미치고 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손가락을 꼭 쥐어서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는 감각을 느껴보세요.” 내가 비현실감으로 지칠 때 심리상담소를 찾아가 들은 말이었다(매번 나 혼자 떠들기만 하고, 별 방법을 제시받지 못했음에도 1회기인 1시간마다 9만 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발바닥을 땅에 대고 천천히 앞 뒤로 그라운딩하듯 왔다 갔다 해보세요.” 손톱이 손바닥에 닿도록, 발바닥이 땅에 닿도록. 내가 허공에 붕 뜨지 않게 지속적으로 따라 했다. 사실 큰 효과는 없었다. 내가 현실에 있다는 안정감은, 내가 스스로 현실감을 느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걷는 걸음마다 땅에 닿지 않고, 뻗는 손길마다 맞닿아있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될 때마다, 내가 이 세상에 아직 건재함을 절실하게 느끼기 위해 온 몸에 힘을 꼭 주었다. 그렇게 하루를 몸에 힘을 꼭 준 채로 지내고 나서는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잠에 들었다. 불안으로 잠 못 들었던 밤들보단 나았다고 해야 하나.
운동을 미친 듯이 하면 좀 나아질까 봐 줄넘기 이천 번, 복싱 연습 그리고 크로스핏까지. 하루 2시간씩 매일 운동하고 나왔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이 끔찍한 감각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쉬이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몸만 튼튼하고, 정신은 어디다 팔아먹은 채로 돌아다녔다. 낯익은 풍경에 낯선 감각들.
“내가 이 세상에 아직 건재함을 절실하게 느끼기 위해 온 몸에 힘을 꼭 주었다.”
욕을 정말 많이 했다. 그래, 날 죽여라. 비현실감이 오든지 말든지. 오면 니가 어쩔 건데. 이런다고 내가 질 것 같냐. 스스로 키운 불안이었으면서 누구에게 주먹을 휘두른 건진 모르겠지만 죽어라고 분노했다. 너 때문에 나는 내 당연하던 능력에 한계치를 두게 되었고, 남들 앞에 서서 자유롭게 내 생각을 펼치긴커녕 엘리베이터도 타기 어렵단 말이다. 한참을 화를 내고 울었는데 그 화가 나에게 돌아왔다. 이유는 당연했다. 불안도 안정도 모두 나였기 때문에.
이런 나를 내가 안아줄 수 있을까. 화와 원망으로 범벅이 되어서는 무슨. 그래도 한 팔을 들어 내 반대쪽 어깨를 잡았다. 다른 팔도 들어 날 꽉 안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렇게 심장을 기준으로 나를 꼭 안아주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근데 그땐 그런 거 잘 몰랐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안았지. 근데 그렇게 안았을 때 그 느낌만큼은 생생했다. 마치 한 순간에 비현실감이 달아난 것처럼.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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