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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29. 2024

소소일상 ep.9

옷장 속에 다시 묻어두는 추억 둘

 드디어 무더위가 물러나고 날씨가 쌀쌀해졌다. 한동안 입지  않을 옷들을 정리해 넣으려는데 옷장에 공간이 넉넉지 않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하나둘 사 모은 운동복 탓일 게다. 옷장 정리에 영 진도가 붙지 않는 나를 보며 남편은 1년간 입지 않은 옷은 모두 버리라고 한다. 해가 바뀌도록 손이 가지 않은 옷이라면 앞으로도 입을 일이 영영 없을 거라면서. 그렇게 시작된 옷장 비우기. 개중에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버리기로 작정한 것도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집어 들었다 다시 개켜 넣었기를 반복하게 만든 옷도 있었다. 한 시간 가까운 이 지루한 작업 끝에 추려진 옷의 양이 제법 되었는데, 앞으로 절대 입을 일이 없을 것이 명백한데도 살아남은 것도 있다.


# 나의 첫 가죽 재킷


  20년이 다 되어가는, 대학 시절 내가 번 돈으로 산 가장 고가의 옷이었던 가죽 재킷. 찬 바람이 불던 봄, 가을이면 매일같이 입고 다닌 옷인데 다시 보니 참 새삼스럽다. 리폼해서 다시 입기엔 너무 구식 디자인이라 엄두도 나지 않지만 버리기엔 서린 추억이 많아 그냥 넣어두기로 한다.


  갑자기 불우해진 내 경제 사정으로 급히 휴학하고 학원강사 일을 하며 알뜰히 돈을 모았던 적이 있다. 목표금액을 다 모으고선 돌연 복학 대신 종로의 수유공간 너머를 택했던 용감한 시절. 지금은 더 유명해진 고미숙, 고병권, 이진경 선생님의 강좌도 듣고 저렴한 참가비로 스터디도 할 수 있던 그곳은 가난했던 나에게 너무도 근사한 곳이었다.

  교복처럼 늘 그 재킷을 입고 들었던 어마무시한 근대사, 예술사와 철학 강좌들. 겁 없이 들어간 고미숙 선생님의 열하일기 강독 스터디에서 옥편을 끼고 머리를 쥐어짜며 좌절했던 시간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내 형편에 모아둔 전 재산을 탕진하며 수유공간을 넘나들면서 나는 미친 듯이 공부하고 열심히 연애했다. 수업이 끝나면 늘 탑골공원 앞 포장마차에 앉아 홍합탕 한 그릇에 부지런히 소주를 마셨고 가끔은 호사스럽게 이상은 콘서트에 다녔다. 낡은 가죽 재킷에 깃들어있는 나의 겁 없고 똘끼충만했던, 다시 못 올 그 시절이 아련하기만 하다. 다시 '너머'에 가 볼 날이 올까 싶지만, 욕심을 조금 빼고 어느 따뜻한 봄날에 탑골공원 돌담길을 한번 걸어봐야겠다. 그땐 이 낡은 가죽 재킷은 버리고 예쁜 새 재킷 하나 사 입어야지.


# 내 이름이 새겨진 셰프 재킷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많이 늦은 게 아닐까’하고 깊은 고민은 했던 당시 나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10년이 넘게 해온 영어강사 경력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선 크게 쓸모가 없었고, 빠른 정착을 위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제야 내가 한때 대박 난 밥집 사장님이자 스스로 깨우 친 요리사의 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365일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던 엄마를 보며 나는 절대 요리를 업으로 삼지 말아야지 했건만 다른 일은 좀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역 대학 산하의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일반적인 요리학교의 2년 과정을 1년으로 압축해 놓은 셰프 트레이닝 과정은 절대 만만찮았다. 실습, 이론 수업과 더불어 매일 주어지는 과제와 퀴즈, 게다가 2주마다 치르는 시험과 평가 때문에 아침이면 정신없이 두 딸 등원(등교)을 시키고 무조건 오전 9시 전에 학교에 도착해야 했다. 5시간짜리 요리 수업을 위해선 셰프 재킷과 바지, 모자와 논슬립 신발까지 챙겨 입고 툴 셋과 나이프 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lab에 간다. 프렙과 그날 받는 레시피를 위한 재료 조달, 조리도구 준비, 재료 다듬기 등등 미즈 앙 플라즈를 마치면 셰프의 시연을 보고 각자 조리대에서 2시간 안에 3가지의 음식을 완성하고, 가니쉬를 창작해서 셰프에게 평가받게 된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완성도, 스피드, 청결과 이해도, 그리고 창작성까지 평가의 기준이다. 이 시간은 지옥이 따로 없다. 한 번에 오븐이며 살라멘더, 레인지에 올려진 음식이 많게는 5~6개씩 되니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선 모두 엉망이 되고 만다. 움직일 때 서로 다치지 않게 수시로 “지나갑니다” 혹은 “칼이요!”를 외치며 방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하고 요리 중간중간 조리대를 정리해야 한다. 평가 후 뒷정리와 청소까지 마치면 수업 시간을 한참 초과하는데 밤 9시 30분 넘는 건 기본, 집에 오면 10시가 넘었다. 늦은 밤참보단 폭신한 침대가 더 간절하지만 잠든 아이들을 살피고 다음 날 먹일 도시락과 저녁 준비, 그리고 수업 준비까지 해놓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행복했다. 몸은 고되지만, 나의 새로운 시작이 기대되고 설레었다.

  오전부터 5시간 꼬박 핫랩을 마치고 나서 딱 10분 휴식 후 다시 5시간짜리 가르망제 코스 중 플레이팅 수업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소위 피케팅이라 불릴 만큼 치열했던 수강 시청을 성공한 덕에 듣게 된 가르망제 수업은 그곳에선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마이클 올슨 셰프가 진행했는데 평가가 까다로워 85점 이상의 점수를 받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철하고 너그러운 듯하면서도 요리에 있어서는 엄격한 그는 쓸만한 재료를 낭비할라치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집어서 혼을 낼 정도로 무섭기도 했다.

  한참 샤퀴테리를 배우던 중이었는데 며칠에 걸쳐 만들어낸 무스와 파테, 갤라틴, 햄과 소시지 등으로 30분간 플라이팅 계획을 짜고 주어진 재료로 가니쉬를 창작해 4개의 접시를 제출하는 시험 날이었다. 평가 중에 올슨 셰프가 갑자기 나를 찾았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라커룸에 가서 핸드폰을 가져와 내가 제출한 요리의 사진을 찍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키친에서 맡은 일은 무엇인지, 그곳의 총 주방장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자신이 그 셰프를 안다면서, "내가 숙제를 내주마! 오늘 찍은 네 플레이팅 사진을 너의 총 주방장에게 꼭 보여주고, 셰프올슨이 너는 팬트리에서 있으면 안 되고 꼭 총주방장 옆에서 플레이팅을 배워야 할 사람이라고 전해."라고 덧붙였다. 이제 막 키친일을 시작한 사람이 총주방장 옆에서 플레이팅을 직접 배우는 건 웬만해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계를 밟아 한참을 배워 경력을 쌓고 수셰프쯤은 돼야 맡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너의 셰프로부터 특별한 답을 듣지 못한다면 내가 직접 전화를 할 거야. 넌 플레이팅에 큰 재주가 있어. 꼭 파인다이너에서 직접 플레이팅 공부했으면 좋겠구나." 하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는 자기 약속을 지켰다. 내가 일하던 곳의 총주방장은 올슨 셰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장 나의 역할을 바꾸어줄 수 없다고 답했고 그 길로 올슨셰프는 내게 그곳을 그만두게 했다. 그는 나를 위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몇 군데에 면접을 잡아 주었고 나는 올슨 셰프만큼이나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셰프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의 도전과  그 시절의 노력이 내 이름과 함께 수 놓인 셰프 재킷. 귀국하는 날까지 입고 일했던 그 재킷을 나는 한국까지 정성스레 챙겨 오고 말았다. 그것을 입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올해에도 그 재킷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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