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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Mar 12. 2024

16화_돌아온 배달이

입양 열흘 만에 파양 당한 배달이

배달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몹시 들떠 있었다. 아이들 입양 완료 파티를 준비하며 신이 단단히 나 있었다. 이렇게 신났던 게 언제였는지 헤아려 보니 까마득했다. 사고 이후 나는 감정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PTSD 후유증) 어지간한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누군가 내 앞에서 가슴을 치며 하소연해도 겉으론 귀담아듣는 척하며, 속으로는 하품을 했다. 초상집에 가 목 놓아 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정신과 선생님은 이런 내 감정을 PTSD의 흔한 후유증이라고 했다. 주로 참전 군인들이 호소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한빛 엄마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식이 죽고 나니 모든 게 다 시들하다고. 그러게요. 저도 그래요. 그 마음 내 어찌 모를까.


그런데 개들을 입양 보내고 나서는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사고 이후 도대체가 뭘 해도 즐겁지 않던 내가 실로 간만에 들뜬 거였다. 그도 그럴게 ‘저는 삼풍생존자입니다’ 책을 쓰고부터 이날 이때까지 밤낮으로 나는 죽은 사람들 얘기만 쫓아다녔다. 누굴 만나도 죽음부터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이 일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신명 나는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또 남 아픈 얘기가 어디 그냥 써지던가. 그만큼 나도 아파야 쓸 수 있다. 내가 그때 그 사람의 심정이 돼야 제대로 된 글이 써진다. 그리고 이는 읽는 사람이 먼저 안다. 그러니 글을 쓰면 쓸수록 괴롭지. (요즘 세월호 10주기 글을 쓰고 있다)


배달이 배송이는 이 와중에 만난 경사였다. 오래된 가뭄 끝에 만나는 단비 같았다.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닌 거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내겐 남 달랐다. 살아있는 생명을 구 하다니, 그 일에 내가 일조하다니. 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성취의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택배들을 여태 돌봐준 임보 누나들 (임시보호)과 지구 누나에게 얼른 다 같이 모여 파티를 하자고 계속 채근했다.


반려견 운동장 큰 거 하나를 빌려 아는 개들도 다 초대하고 고기도 굽고 떡도 돌릴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날 먼저 내려가 운동장에 만국기도 걸고 군악대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고 소박하게 단체 티셔츠를 맞춰야겠다 생각했다. 사전에 수요조사를 해야겠지? 반팔이 좋을까 후드가 좋을까. 때마침 녀석들이 유기 됐을 때 일러스트레이터 김삼분님께서 그려준 그림이 감사하게 있어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일을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녀석들 이름으로 앞으로 이 맘 때면 매해 유기견 입양센터에 후원할 생각이었다. 이미 복주와 해탈이 생일 즈음에 다만 얼마라도 매년 유기견 보호 단체에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혼자 들떠 잘 밤에 누워 이런저런 동물 구조 협회를 돌아다녔다. 돈을 마련할 궁리는 뒷전이었다. 그저 어디에 어떻게 쓸까 신이 나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작은 돈을 쪼개서 여러 군데 보낼까 어려운 곳에 조금 더 보낼까. 배달이가 돌아온 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나는 참말로 달고 맛있는 김칫국을 원 없이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배달이가 돌아온 것이다. 파양 사유를 물어보니 지구 누나는 내게 입양 가족 엄마가 쓴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 글에는 본인의 딸아이가 배달이를 너무 괴롭혀 더는 배달이를 못 키우게 됐다는 핑계 아닌 핑계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애를 혼내기도 해 보고 개와 애를 분리도 시키며 이런저런 노력을 해 봤지만 도저히 안 된다. 딸아이가 지속적으로 배달이를 괴롭힌다는 얘기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뭔가 이상했다. 그 글 어디에도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 거나 면목 없다거나 하는 사과의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래 좋아. 다 좋아 그런데 왜 이 글이 제품 구매 후 반품사유처럼 느껴지지? 하는 생각 말이다. 글 쓴이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무리 봐도 내게는 배달이가 생각만큼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으니 반품합니다.라는 뉘앙스로 읽혔다. 그리고 말이다. 설령 아이가 개를 다치게 했다고 한들 왜 어른이 아이 탓을 하는 건지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꼰대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행여 아이가 잘못했다 치자 그래도 성인인 본인이 그 일에 책임을 지고 본인 탓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이들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이건 애들이 악하고 못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게 생존에 유리해서 그러는 거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자원을 개가 됐든 형제가 됐든 남과 나누면 본인의 성장에 불리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아이의 행동은 오히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실망스러운 건 다시 말하지만 부모의 태도였다. 파양의 책임을 어린애한테 전가하는 지극히 무책임한 태도.


전에 본가에서 개를 길렀다. 시츄였다. 당시 어린 조카들은 본가에 오면 개를 장난감처럼 여겼다. 어린 마음에 개를 찌르거나 잡아당기면 나오는 개의 반응이 꽤 재밌는 것 같았다. 옆에서 보다 내가 여러 차례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으나 항상 그때뿐이었다. 해서 어느 날은 “네가 그러면 쟤도 아파 너도 똑같이 당해 볼래?” 하며 조카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더니 조카가 죽는다고 울었다. 그 후 조카는 달라졌다. 개를 눈으로 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접시에 물을 부어달라고 하더니 개 옆에 엎드려 개처럼 물을 핥아먹기도 했다. 물론 그때 조카의 귀를 잡아당긴 건 요즘도 종종 후회한다. 당시에 새언니가 나를 미친년 보듯이 봤던 것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입양가기전 임보집에서 룽지누나랑 신나있는 배달이>
<열흘 후 임보집으로 다시 온 배달이>

열흘 만에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온 배달이는 슬프게도 모든 행동이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임보 누나 (룽지 누나) 말에 따르면 전에는 목욕을 해도 아무런 저항이 없던 애였는데 심지어 목욕을 즐기던 친구였는데 이제 목욕탕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하고 타월을 보면 기겁한단다. 또 자꾸 어딘가로 숨고 외부 소음에  민감하게 군단다. 특히나 배달이가 쉬고 있을 때 근처로 사람이 지나가면 화들짝 놀란다고 한다. 고작 열흘이었는데 그간 배달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알 수 없다.


하지만 배달이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파양 후유증을 앓는 아이들은 많다. 어떤 친구는 산책하다가 버려진 후로는 평생 산책을 거부했고, 한 친구는 차를 타고 가다 버려진 후로는 차에 도무지 안 타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지난해 링고라는 친구는 파양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센터로 돌아와 스스로 굶어 죽었다. 이렇듯 개들은 파양을 당하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임보집에 온 배달이>

어쨌든 입양 갔던 배달이가 돌아오며 계획하던 파티는 무산 됐고, 우리의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배달이 주가가 한창 높을 시기를 한 달 넘게 저 집에 입양 문제로 엮여 입양 체험까지 다녀오느라 최적의 입양시기를 놓쳤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배달이가 돌아오며 내게 생긴 말 못 할 근심은 돌아온 배달이 얼굴이 그새 너무 못생겨진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지구 누나와 통화하면서 “이 얼굴로 이제 어떻게 입양 홍보를 해.”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이 판에선 성격 같은 건 필요 없고 사진 잘 나오고 예쁜 애들이 무조건 먼저 방을 빼기 때문이다.  


끝으로 배달이를 파양 한 가족이 아주 밉기만 한 건 아니라는 말도 하고 싶다. 이 와중에 고마운 것 하나는 그나마 빨리 배달이를 우리한테 돌려보내 준 것, 우리 모르게 어디 다른데 내다 버리지 않은 것 정도가 되겠다.


자 그럼 이제 파티의 꿈은 접고 다시 배달이의 가족을 찾아야 한다. 이런. 글을 다 쓰고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김 빠진 맥주 꼴이 돼 버렸다. 아휴, 속 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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