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Oct 08. 2024

한글-귀한것을 귀하게

한글날에


각종 박사님들이 넘쳐나고

몇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요즈음.

그러나 한글을 채 깨치지 못한 이들도 있다.

세끼 먹기도 힘든 그 시절, 여자들이 배워 뭐 하냐고 천시받던 앞 시대를 사셨던 여인들.


한글을 익힐 기회를 놓치신 할머니들.

나라가 부유해지고 또한 자녀들을 다 키워 내시고 그분들도 여유가 생기셨다.

요즈음, 문맹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강습반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이른바 문해교실- 문자 해독 교실

EBS에서 문해 프로그램도 방영했다.


얼마 전, TV의 한 프로그램.

두 연예인이 트럭을 몰고 전국의 시골을 다닌다.

만물상같이 각종 생필품을 가득 싣고 여기저기 시골 분들에게 물건도 팔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곳 풍광도 보여주는 프로그램.


트럭이 어느 한적한 시골 경로당 앞에 멈췄다.

할머니들이 우르르 나오셔서 흥정도 하면서 물건을 사신다.

등이 굽으신 한 할머니가 두루마리 휴지 한 뭉텅이를 사셨는데 꽤 떨어진 집까지 휴지를 좀 가져다줬으면 한다.

젊은 청년 연예인이 집까지 물건을 들어다 드렸다.

집에 도착한 할머니, "잠깐, 내 보물을 보여 줄까?"

다락에서 종이 뭉텅이를 꺼내신다.


그분의 보물- 달력 이면지에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한글들.

거진 평생 한글을 못 깨치시다 이제 한글을 배우신지 몇 개월 되었단다.

틀린 철자는 있어도 글씨는 아름답다.

할머니는 또 자랑을 하신다.

"나는 시도 지어요."

그 시는 당신의 손을 생각하며 지으신 것.

내용은 대략 이랬다.

'손이 미안하다. 주인을 잘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나 같은 주인을 만나 평생 이런저런 고생 많이 했구나...'


그 할머니 시를 읽던 그 젊은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도 역시 뭉클했다.

부끄러웠다.

글자를 몰라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럼에도 평생 자식들을 억척같이 돌보신 그분의 희생.

저렇게 귀하게 쓰일 수 있는 한글.

한글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도 불어도 조금씩 아는 우리.

외국어는 어려서부터 기를 쓰고 배우면서 이렇게 귀한 한글은 천대를 했구나...


어떤 할머니는 복지관 한글 선생님이 내어 준 숙제를 한다.

초등학교 손녀에게 도움을 받아야 숙제가 끝난다.

그러던 그분이 마침내 편지 한 장을 힘들게 써내셨다.

수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옛날 신혼 때 군입대하신 할아버지.

드문드문 그분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러나 어린 신부는 그 편지를 읽지 않았다. 그녀는 한글을 몰랐다.

신랑의 편지를 한글 아는 이웃에게 읽어달라 했다.

신부가 문맹인 줄 모르는 신랑은 그리운 신부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이제 그 신부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평생 모를 줄 알았던 한글.

복지관에서 배우니 된다! 된다!

동네 가게 간판도, 신문지 글자도, TV 자막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마침내 그 할머니는 사랑하는,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버린 그 신랑에게 반세기 만에 답장 편지를 쓰셨다.

"여보, 이제야 답장을 써서 미안해요..."


배우려 하면, 가르쳐 드리려 마음먹으면 별것 아닌 것을 우리는 참 여유가 없이 살았나 보다.

어르신들을 너무 배려하지 않고 살았나 보다.

언어는 물론 이것저것 수많은 것들을 우리는 배우고 또 배우면서 저분들의 사정은 왜 생각 못 했을까?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딴 세상을 만났다고 하신다.

내가, 또한 많은 이가 당연히, 무심히 쓰는 이 글자가 그분들에게는 신세계란다.

한글 배우려, 설거지를 얼른 하고 밭매기를 서둘러 끝내고 가방 챙겨 복지관으로 향한다.

한글 깨치기가 끝나면 보통 시 창작 반으로 진급하신다.

그분들은 그렇게 귀하게 배운 한글로 시를 지으신다.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시집을 내셨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칠팔십 년, 그 어려운 시절의 각종 풍상을 겪으면서 살았던 삶의 진솔함이 절절히 묻어난다.​​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구십에 글자를 배우니까...>



<내 이름은 분한이>
                           김분한

우리 어매 딸 셋 낳아
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 분한이
내가 정말 분한 건
글을 못 배운 것이지요
마흔 서이에 혼자되어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글자만 보면 어지러워 멀미가 났지만
배울수록 공부가 재미나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구십에  글자를 배우니까
분한 마음이 몽땅 사라졌어요




          <내동생>
                     하순자

엄마는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했습니다
나는 동생을 업고 젖을 먹이러 다녔습니다
쌀을 씹어 죽을 끊여 먹이기도 했습니다
누덕바지로 만든 기저귀에 오줌을 싸서
내 등이 다 젖었습니다



금년 봄,

블로그를 시작해 보았다

칠순을 앞두고, 살아오면서 느낀 것, 경험했던 것들을 블로그로 한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

몸도 마음도 이젠 언제 훅~ 나빠질지 모른다는 조바심.


그런데 나는 컴맹이다.

문맹인 할머니들처럼.

물론 검색, 주문 등은 독수리 타법으로 하지만.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긴 했다.

역부족.

젊은 사람들은 바쁘다.

나이 든 사람들의 느릿느릿함을 답답해한다.


앞 세대 할머니들은 한글 앞에서 막막.

지금 세대 할머니들은 끊임없이 로그인을 요구하는 인터넷 앞에서 막막.

우리가 인터넷을 모르지 인생을 몰랐나?


스마트한 스마트폰!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이리저리 해보니

글쓰기되었다. 만세!

물론 최소한의 작성.

내 주위 친구들은 나의 브런치에 잘 안 들어온다. 못 들어온다.

들어오기 힘든다.

로그인하라는 말만 나오면 머리에 쥐가 난단다.

공대를 나온 늙은 남편도 브런치에 글 쓰는 마누라를 부러워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뉴스 기사를 보다가

너무 놀랐다.

정치인들의 기사에 이은 댓글이 그야말로 욕 중의 욕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자기 취향에 맞지 않고, 설령 나쁜 짓을 했더라도 그런 악성 댓글을 달 때, 읽는 사람도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도 황량해지지 않을까?

그 글들의 무례함과 심성의 황폐함을 넘어 이 귀한 한글이 이렇게 천하게 쓰일 수도 있구나 하는 서글픔.


평생 까막눈이시다가 느지막이 한글을 깨치시면서 새로운 인생을 맞았다고 즐거워하시던 그분들.

"손아 고맙다..."

"여보 이제야 답장을 씁니다..."

그 귀한 한글로 어떤 이는 욕으로 천하게 쓴다.


우리는 너무 평범하다고

귀한 것을 귀한 것인 줄 모르고

함부로 쓰고 있지 않은지?.



(그런데

만일 세종대왕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나이 드셔서 컴맹이시고

블로그 운영도, 읽기도 힘드실 듯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