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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Jul 11. 2022

이면계약의 효력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겉과 속을 다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가 바로 부동산 매매계약시 실제 거래대금과 다른 금액으로 다운계약서/업계약서를 쓰는 경우입니다. 세금을 회피하거나 시세조작을 위한 목적 등이지요.


이면계약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주로 효력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표면상 계약과 이면계약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의뢰인들은 보통 위와 같이 질문하십니다. 대개 이면계약은 갈등이 생기기 전까지는 당사자들만의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송을 하면 판사가 비밀계약을 인정해줄지, 아니면 표면상의(외부에 공개된) 계약서만 인정해줄지가 궁금한 것이지요.


하지만 질문이 틀렸습니다.


분쟁해결의 기준이 되는 계약내용을 확정하는 데에는 이면계약인지, 비밀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이면계약은 무효다"라든가, 반대로 "이면계약이 진짜다"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논리의 출발 : ' 진짜' 합의는 무엇인가


소송에서 변호사들이 상당히 공들이는 부분이 바로 '계약내용의 확정(계약해석)'입니다. 판결의 결론이 도출되는 논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면계약인지 여부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계약서의 유무, 그 외관, 공개 여부, 관공서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당사자간에 진짜 합의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원칙입니다.


비교적 쉬운 예는 부동산 매매계약을 하면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쓴 경우입니다. 계약이 해제되어 매수인이 매매대금을 반환받으려면 진짜 매매대금은 다운계약서와 다름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실제 매매대금이 오간 증빙(계좌이체, 차액을 현금영수했다는 확인서 등) 정도만 제출되어도 판사가 원래의 합의를 계약내용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당사자간의 '진짜' 합의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습니다. 소송에서 서로 다툰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한 사람은 당초 약속과 달리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진짜 합의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사후적으로 드러난 증거를 토대로 계약내용을 확정하므로, 누가 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지에 따라 소송의 승패가 달라집니다.


우선 이면계약이 있음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그 존재를 입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표면상의 계약에 비해 증거가 확실히 남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면계약 존재의 입증 단계만 넘어선다면 상황이 반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판사로서도 이면계약이 체결될 정도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어 계약해석에 좀 더 신중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만약 상대방이 이면계약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었다면, 존재가 입증된 순간 이미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려 더 이상 새로운 주장을 하더라도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당사자간 이면 합의가 있는 경우 무조건 부인하고 나서는 것만이 꼭 유리한 전략은 아닙니다. 



3. 완전히 다른 논점 : 법에 반한다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면계약대로 계약내용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그대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면합의는 '원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기 위한 경우가 많고, 그래서 불법과 종종 관련됩니다.


법을 어겼다고 해서 그 결과가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계약의 효력이 부정되느냐 여부입니다. 어떤 법은 어기면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는데(강행규정 또는 효력규정), 어떤 법은 어겨도 제재를 받을 뿐 계약 자체는 살아남습니다(단속규정).


예를 들어 원칙적으로 농지의 임대를 금지하는 농지법 제23조는 강행규정이므로, 이를 위반한 농지임대차계약은 무효입니다(대법원 2017. 3. 15. 선고 2013다79887, 79894 판결).


반면 개업 공인중개사 등이 중개의뢰인과 직접 거래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6호의 경우, 이는 단속규정이므로 이를 위반한 거래라 할지라도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입니다(대법원 2017. 2. 3. 선고 2016다259677 판결). 따라서 중개인이 직접 갖고 있는 좋은 물건이라는 말에 속아 시세보다 비싸게 물건을 샀다고 하더라도, 위 규정 위반만을 이유로는 계약을 물릴 수 없습니다.


나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증권거래법 등 금융거래의 신뢰를 해치는 사안 등), 계약의 효력이 부인되지 않더라도 그 제재(과태료, 행정처분 등)가 너무 커서 민사소송에 승소하더라도 결국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일도 생깁니다.


따라서 당면한 소송에 이기기 위해 이면계약의 존재나 효력을 주장하기에 앞서, 법 위반 여부 및 그 효력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빈대 잡으려다 집을 다 태울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4. 이면합의와 소위 '"완전합의조항'


"완전합의 조항"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영미법계 계약서에서 많이 쓰는 조항인데 국제거래를 통해 이를 접한 기업들이 표준계약서에 많이 적용시켜 요즘은 다양한 계약서에서 등장합니다. 'entire agreement clause'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해 완전합의, 완전계약조항이라고들 합니다.


그 내용은 '본 계약서의 기재사항이 이와 관련되어 당사자간에 지금까지 오간 어떤 내용과 방식의 합의에도 우선한다'는 점을 핵심으로 합니다.


이면계약에 관해 검색하다 보니 이면계약과 관련하여 완전합의조항이 언급되더군요.


우선 완전합의조항은 본래 계약 체결 과정에서 서로 오간 여러 주장과 임시적 합의가 추후 완결된 합의로 오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최종결론'을 선언하는 목적의 조항입니다. 1안, 2안, 3안 후 최종안이 나오면 앞의 임시안들이 다 폐기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반면 이면계약은 표면적으로 완결된 다른 계약이 존재함을 전제로, 사실 당사자간에는 달리 합의하였다는 이중적인 계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완전합의조항의 존재만으로 이면계약 인정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계약해석이라는 법리 내에서 참고할 조항이 될 뿐입니다.


다만 소송에서 완전합의조항이 있는 경우 이면계약을 부정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이면합의를 한다면 표면상 다른 내용을 담은 계약서에 굳이 완전합의조항을 놔 둘 이유는 없겠지요. 계약서에 도장 찍은 후에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도장을 찍기 '전'에 신중히 판단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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