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바로 인내심입니다.
너무나 화가 나고 분해서, 또 상대방에게 내가 진짜로 고소까지 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또 어떻게든 결론을 내 버리고 싶어서,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고 싶은 그 마음을 참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고소를 위한 제1의 요건입니다.
고소를 하려는 사람은 아마 뭐라도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내가 피해자고 억울하기 때문에 경찰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경찰을 내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달려가 호소부터 하려는 것이지요.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는 지점입니다.
피해자를 도와주는 것이 경찰의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전에 반드시 거치는 단계가 있습니다. 바로 피해자가 맞는지 걸러내는 과정입니다.
관공서에 일하시거나 공무원 가족을 두신 분들은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세상에는 참 별의별 사람들이 살지요. 경찰서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억울한 피해자뿐만이 아닙니다. 떼인 돈 받아달라는 사람, 남을 모함하는 사람, 심지어 자기 집 수리해 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찰이 민원인 앞에 대놓고 ‘진상’이라고 욕하지는 않지만, 고소장 반가워하는 경찰은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경찰관은 내 편이 아닙니다. 누구의 편도 아닌 경찰관 자신의 편일 뿐입니다.
오랫동안 피해를 입고 시달리다 법률상담을 하러 오시는 의뢰인들과 이야기 해 보면, 종종 골치 아프게 꼬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미 형사고소를 했다가 불송치 결정(경찰이 형사 기소할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하는 결정)이나 불기소 처분(검사가 기소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하는 것)을 받은 사안들입니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솔직히 화가 날 정도입니다. 의뢰인이 말하는 사실관계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A증거랑 B증거가 있으니 저번에 했던 사건처럼 이러이러한 법리와 판례를 제시해서 고소장을 쓰면 승산이 있겠구나!’라고 계획을 짜며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의뢰인이 “사실 제가 고소를 했는데 경찰이 이걸로는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라고 말하면 얼마나 허탈한지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수사기관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여 수사를 종결한 사건에 대해서도 새로운 증거가 파악되거나 기존의 수사가 미진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다시 수사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즉, 고소인이 다시 찾아가서 “저번에는 제 고소가 좀 부족했는데, 제가 새로운 증거를 많이 보완했으니 다시 수사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다시 수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점이 재판과 다른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상점에서 직원이 한 번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 다시 물어보고, 해 달라고 떼쓰는 사람을 우리는 ‘진상’이라고 부릅니다.
경찰 입장에서, 이미 수사기관이 절차에 따라 판단을 내려 종결한 사건을 “다시 해 주세요! 또 해 주세요!”라고 하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아~ 그렇지, 우리 경찰은 잘못하는 일이 참 많으니까 불송치 결정이 아마 잘못되었을 거야. 이 억울한 민원인을 도와서 한 번 했던 일을 다시 또 해 보자! 물론 새로운 다른 사건들이 많이 밀려있고 이것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어~’이겠습니까?
변호사 입장에서, 똑같은 수임료를 받는다면 형사재판 변호 사건과 고소 대리 사건 중 뭐가 더 일이 많을까요? 심리적 부담감을 제쳐놓고 업무량 자체만을 본다면 답은 고소 대리입니다.
형사 재판 단계의 피의 사건은 이미 수사기관의 조사와 검사의 법리 검토가 끝나 있기 때문에, 변호인은 그 약점과 부당성을 공략하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기존의 증거에 무슨 허점이 있는지, 검사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고들면 되니 공격목표가 한정되어 있지요.
하지만 고소 사건은 다릅니다. 넘쳐나는 고소 사건들을 떨쳐내려는 경찰의 방탄막을 뚫고 “제 사건은 달라요! 이건 검찰에 넘겨야 할 진짜 사건다운 사건입니다. 저를 내버리지 마세요!”라고 외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밥상 다 차려서 떠먹여 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힘들게 조사하시는 경찰 수사관님들의 노고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아닙니다. 변호사가 날고 뛰어본들 어떻게 수사 업무를 하겠습니까. 숟가락에 밥 떠서 드린다는 각오로 고소장을 충실하게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분들은 고소라는 것이 “내가 피해를 입었으니 수사를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나 때렸다고 울면서 선생님께 이르는 초등학생처럼 말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입니다. 경찰은 초등교사가 아닙니다. 빨리 일 끝내고 퇴근하고 싶은 공무원입니다.
원래 고소를 하는 사람이 갖는 유리한 고지가 있습니다. 억울한 피해자에게 법이 마련해 준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피의자(피고소인)에 앞서서 수사기관에 먼저 내 입장을 주장해 볼 수 있고, 이런저런 요청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소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피의자(피고소인)에게 큰 심리적 압박을 주기 때문에 민사 소송이나 형사 합의에서 유리한 카드로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설프게 고소해서 불송치 결정이 나 버리면, 이 모든 유리함을 잃고 전세가 역전됩니다. 당당한 고소인으로서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던 내 입장은, 이제 완전히 바꾸어 국가기관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반항아가 됩니다. 벌 받고 돈 물어낼까봐 전전긍긍하던 상대방(피고소인)은 이제 더 이상 고소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사기관의 불송치 결정이나 불기소 처분이 법원의 재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이런 결론은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론적으로야 민사소송의 판사는 수사기관의 판단은 물론 형사 재판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신대로 불법행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의 재판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가해자를 단죄하고 피해를 배상받아야 할 나의 당연한 권리를 내 손으로 날려버리는 것이 바로 어설픈 고소장 접수입니다.
증거 수집이나 준비를 머뭇거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많이 준비하되, 고소장 접수라는 칼을 빼 드는 일만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일격필살, 단 한 번 칼을 빼 들어 끝장을 내야 합니다.
고소장의 형식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양식을 다운로드 받아서 똑같이 베껴 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고소장의 ‘어설픔’을 덜어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용과 실질을 채워야 수사관이 내 고소장을 제대로 읽어 줍니다.
참고를 위해 고소와 관련된 예전 포스팅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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