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고고학' 현장을 찾아서 下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서는 지질학, 화학분야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에 나서는 등 국내 선사고고학 분야에서 학제 간 연구가 본격화 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사람의 생활흔적이 담긴 문화층 아래에는 자연암반이 있기 마련인데, 지질학 연구를 통해 해당 암반의 연대가 규명되면 유적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는 유적의 형성과정을 밝히는데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전곡리 발굴조사에서는 1979년 자연지리학을 전공한 서울대 박동원 교수를 필두로 1983년 서울대 이상만 교수(지질학)와 장남기 교수(식물생리학) 등이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특히 1983년도 조사는 아예 자연과학 연구를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현장에서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방식으로 유적의 생성 연대를 추정한다. 대기 중 포함된 ‘탄소(Carbon)-14’의 비율은 일정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자연 붕괴된다는 사실에 근거해 경과된 시간을 역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고고 유적에서 불에 탄 나무(목탄)와 같은 유기물을 발견하면 여기에 포함된 탄소성분을 측정해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측정 혹은 보정 방식에 따라 측정된 연대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선사 유적에서는 늘상 연대 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서도 4만~5만 년 전과 30만~40만 년 전으로 학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발굴단은 용암의 생성연대를 규명하기 위해 일본 교토에 찾아가 지질학자들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전곡리 유적을 발굴한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곡리 유적에서 연대 논란을 끝낼 수 있는 연구방법을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며 “토양성분과 형태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퇴적층의 기원과 내력을 파악하는 미세형태학(micro morphology) 연구를 전곡리에도 적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선사유적에서는 동물학이나 식물학 연구자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 유적에 담긴 씨앗이나 동물유체의 형태를 파악하면 유적 생성 당시의 자연생태 환경을 생생히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저서 ‘총, 균, 쇠’에서 쓴 야생식물의 작물화나 동물 가축화의 지역별 발생시기도 이 같은 연구방법을 통해 알아낸 내용이다. 전곡리에서는 토층 샘플을 통째로 채취하기 위해 ‘피스톤 코어’ 굴착이 1983년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다. 이를 위해 발굴단은 서울 용산의 우물업자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2m 높이의 흙을 한꺼번에 퍼내야 했는데 당시 마땅한 기술이 없었던 것. 결국 우물 파는 기술을 응용해 길쭉한 관으로 토층 샘플을 담아내는 데 가까스로 성공할 수 있었다.
때론 생물학 표본을 통해 옛 사람들의 식생활을 파악할 수 있다. 2003년 여름 익산 왕궁리유적 발굴단은 길이 10.8m, 폭 1.8m, 깊이 3.4m의 기다란 구덩이를 발견했다. 구덩이 밑 유기물 층에서 나무막대와 씨앗, 방망이 등이 출토됐는데 유독 냄새가 심했다. 발굴단은 곡식이나 과일을 저장한 구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자문위원으로 현장을 찾은 이홍종 고려대 교수(고고학)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유구 양상이 일본 고대 화장실 터와 비슷하다”며 유기물 층에서 흙을 채취해 고려대 의대에 생물학 분석을 의뢰했다. 조사결과 다량의 기생충 알이 확인됐다. 삼국시대 공중화장실 유적이 국내에서 처음 발굴된 것이다.
왕궁리 유적에서의 기생충 연구는 백제인들의 식생활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육식성 기생충인 조충이 검출되지 않은 반면, 채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주로 감염되는 회충, 편충이 집중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민물고기에 많이 서식하는 간흡충이 발견된 걸 볼 때 백제인들이 주변 하천(금강, 만경강)에서 잡힌 물고기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지질이나 지형에 대한 분석도 고고 발굴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방법이다. 이홍종 교수가 이끈 고려대 발굴단은 발굴에 착수하기 5년 전인 2005년 9월 고지형(古地形) 분석을 통해 세종시 나성리 도시유적의 대략적인 윤곽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발굴과정에서 도심 호수로 밝혀진 거대한 웅덩이의 존재도 이때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앞서 3개 발굴조사 기관이 나성리를 비롯한 금강 일대 충적지에 대해 지표조사를 실시했지만 별다른 유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땅속 깊은 곳에 유적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지형 분석결과를 토대로 지표로부터 8m나 파내려가자 비로소 나성리 유적의 실체가 드러났다.
고지형 분석이란 항공사진과 고지도 등을 통해 유적 조성 당시의 옛 지형을 추정해 지하에 묻힌 유적의 양상을 추정하는 기법이다. 연사된 항공사진들의 낱장을 비교하면 겹친 부분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를 3차원(3D)으로 재연하면 세부 지형의 높낮이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오랜 침식과 퇴적으로 사라진 옛 물길(구하도·舊河道)이나 구릉의 위치를 알아내 옛 주거지의 존재 여부 혹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기원전 5000년과 기원전 2세기, 기원후 11세기경 발생한 기후변화로 인해 생성된 지형변동과 단구들도 고지형 분석에 활용된다.
나성리 유적을 발굴한 이홍종 고려대 교수는 2010년 고지형 분석을 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ATIS-3D) 개발을 의료장비 업체에 의뢰해 2013년 특허를 받았다. 미군도 이와 유사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군사작전을 위한 지형분석에 이용한다고 한다. 첨단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비교 자료로 쓰이는 1960~70년대 항공사진이나 조선시대 고지도 등 희귀자료를 입수하는 것도 관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가 작성한 지형도까지 구하기도 한다.
특기할 점은 고지형 분석을 통해 규명한 옛 물길을 따라 요즘 들어 지진이나 싱크홀이 빈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물길은 암반층이 상대적으로 얇아 지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고베 지진 당시 사망자의 97%가 구하도와 습지에 몰려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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