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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은개뿔 Oct 04. 2020

아프리카 응고로고로에서

워킹맘의 존버실패기- 프롤로그

그것은 살아있는 치타였다.


 그것은 낮잠용으로 틀어두는 따분한 다큐멘터리 속 2D가 아니었다. TV 광고에서 색감 자랑용으로  눈을 끔뻑이는 멍청한 모습도 아니었다. 군데군데 누런 풀이 박혀있는 털, 촘촘한 점박이 무늬와 우아한 허리선이 매력적인, 진짜 치타였다. 묵직하게 도열해있던 사파리용 지프차가 시동 따위를 거는 찰나, 치타는 자신의 다리로 시속 백 킬로의 속도로 달려 먹잇감을 잡아왔다.

 

 입 옆 수염에 피를 군데군데 묻히고 작은 영양의 늘어진 목덜미를 물고 왔다. 치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차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우아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지프차는 치타를 뒤쫓으려 했다. 그러나 몇 차례 무전이 지나간 뒤 아프리카인 운전수는 이내 추격을 포기했다. 치타의 사냥 모습을 봤으니 이제 그녀가 조용히 밥을 먹도록 내버려 두지는 것이었다. 운전사가 영어로 이야기해서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는 대략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동물 사파리는 아프리카에서 '게임 드라이브'라 불린다. 

사바나 초원 내에서 허가된 길을 지프차로 달리면서 동물을 찾아 나서는 게임 드라이브는 세렝게티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경험 중 하나다. 건기에는 물을 찾아 떠나는 수 백 마리의 초식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기린과 코끼리를 볼 수 있는 지구상 몇 안 되는 곳이다. 원숭이가 귀여운 것이 아니라 영악하고 못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몸집이 큰 버펄로라도 늙으면 젊은 사자의 손쉬운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늙은 버펄로는 사자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응고로고로 분화구에 있는 리조트에서 풀을 뜯으며 마스코트처럼 살기도 한다. 

 



나는 2년 전 겨울, 19시간을 날아 세렝게티에 왔었다. 

인천에서 카타르로, 카타르 공항에서 환승해서 킬리만자로 공항에 내렸다. 그렇다. 가수 조용필 선생이 읊조리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는 그곳, 킬리만자로였다!(자연스레 연식이 나옴..-_-;;) 작은 공항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다시 두 시간을 실려왔다. 작은 비행기에서 내려 멍청하게 눈을 떠보니 나는 사바나 초원의 한가운데 있었다. 한창 회사에서 고민이 많았던 그때, 스트레스 속에서 자주 나는 두통과 위경련에 시달렸다. 아프리카에 가면 그날로 싹 나을 줄 알았건만 인간이 어디 그런 존재이던가. 어리석은 나는 세렝게티까지 가서도 줄곧 그놈의 회사 생각을 했다. 


 바위 위에서 갈기를 휘날리던 사자를 보며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때, 나는 차 시트에 앉아서 쓰다 만 아웃룩 메일의 뒷문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옆 부서 밉상스러운 후배의 싹수없는 말뽄새는 왜 자꾸 떠오르던지.... 그때 내가 쏘아붙였여야 했는데 후회와 한탄을 거듭했다. 그러는 사이 바로 옆으로 지나가던 아기 코끼리 가족은 순식간에 흑백 처리되었다. 바분 원숭이의 검붉은 엉덩이를 마주쳤을 때에는 승승장구하는 동료의 잘난 체하는 얼굴이 떠오를 뿐이었다. 

 하이에나가 눈을 번쩍이던 숲 속에서의 저녁식사는 또 어땠나. 커다란 나무와 낮은 초목 뒤의 동물들은 제각기 다른 채도로 은색 눈을 빛냈다. 처음에는 저 번쩍이는 것이 뭐지? 했다가 중간중간 총을 들고 서 있는 아프리카인 가드를 보고 알 수 있었다. 풀밭 위의 저녁식사 뒤에 우리를 저녁 식사감으로 노리고 있는 맹수가 도처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 초원 아래에서도 나는 상사가 나에게 했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그 말이 부서를 옮겨주겠다는 건지,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건지, 잘하라고 쪼는 거였는지 곱씹느라 밥을 못 씹었다.


오호통재라, 나는 아프리카의 모든 장엄한 광경을 회사 찌끄래기로 생각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던 것이었다!


(바보 같은 워킹맘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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