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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은개뿔 Oct 04. 2020

아프리카 응고로고로에서 2

워킹맘의 존버실패기 - 프롤로그 2

 낮은 나무와 돌, 초록 정원이 눈 끝까지 펼쳐진 사바나를 앞에 두고 나는 퇴사에 대한 책을 읽었다. 


직장과 집 모두 나를 벗겨먹으러 달려든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불안하고 겁이 났다. 고단한 인생이 질질 끌려 더 무거웠다. 회사는 늘 그랬듯 일정한 강도로 임직원을 갈궜을 뿐이었는데, 그때 나는 이전과 다른 무게를 느끼며 몹시 힘겨웠다. 시스템을 다루는 업무는 나와 맞지 않았다. 출근길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도 귀찮았다. 맞는 업무를 할 때에는 썩 괜찮은 마음으로 다니기도 했지만, 이제는 뒷방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아 유능감 따위는 코딱지만큼도 찾아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눈이 잘 떠지고 블라우스와 재킷을 색깔 맞춰 입는 것이 스스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홈런볼 두 봉지와 아인슈페너 커피를 순식간에 먹는 일 이외 모든 것이 성가셨고 귀찮았다. 

다리를 질질 끌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아들에게 괜한 신경질을 내는 일이 잦았다. 아이는 그냥 자기 할 말을 할 뿐이었는데, 못난 애미인 나는 쓸데없이 날카롭게 훈육했고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화를 냈다. 그런 밤에는 입 벌리고 자는 아이 얼굴을 보며 자주 울었다. 주말엔 허리가 아플 때까지 얕은 잠을 잤고 쌓인 설거지는 언제나 남편의 몫이었다. 


 이 모든 현상은 나에게 요구했다. 이제 변화하라고. 바뀌어야 하는 때라고. 

하지만 직장인에게 그런 외침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렇게 따지만 직장을 다니는 회사원은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처럼 전지전능하신 월급 신과 빨리 흐르는 시간님의 힘으로 소리 없는 외침을 깔아 뭉기려 애썼다. 그러나 이것이 뭔 일인가. 막 40대를 맞은 나의 사추기 호르몬과 이 마음이 합쳐지면서 자꾸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의무적인 내가 아니라 나만의 나로 살아보라고, 계속 눌러 참느라 못해봤던 것들을 이제 한 번 해보라고,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도 죽지 않는다고, 일단 한 번 해보라고 저 아래부터 계속 속닥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십팔 년 동안 몸과 정신을 지배한 회사님의 갑옷은 끈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분은 악몽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한 날에도 아무 일 없이 출근하도록 촉수를 뻗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참고 다니잖아, 이거 받아' 속삭이며 월급 진액을 뿜어냈다. 아이 학원비와 레슨비를 뭉텅 이체하는 밤에는 퇴사 생각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먹이사슬의 최약자였던 나는 피라미드 꼭대기인 회사를 걱정하며 바보 같은 일상을 살아갔고, 그것은 멀리 탄자니아까지 이어졌다. 아프리카의 그 모든 장엄한 광경은 음소거된 흑백 TV처럼 보였고 우리를 지나쳐가는 거대한 버펄로 떼는 박제된 땡땡이 정도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면서도 빙싯 웃음이 난다. 거기까지 가서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회사 생각을 계속했을까. 내 생각을 1도 안 해주는 회사를 위해 나는 왜 그랬을까. 

 


 얼마 전, 승진에서 떨어진 몇 안 되는 사람 속에 내가 있었다. 

승진 누락은 생각하는 것보다 당해보는 것이 진정한 맛이다!

나는 ㅂ로소 번쩍 정신이 들었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던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보기로 했다. 마침내 상사와 면담하면서 회사를 나가겠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아직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니 약간의 숨구멍을 얻은 기분이었다. 전에 비해 나는 훨씬 가볍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이제 나만의 뻘짓들을 시작하고 있다. 

어쨌든 저쨌든 인생은 삽질의 연속이 아닌가. 그럴 바에는 남이 시키는 삽질보다는 나 스스로 하는 삽질이 훨씬 더 나았다. 예나 지금이나 삽질은 고되지만 이제는 지랄 맞은 회사의 끝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덜 힘들다. 어떻게든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 빌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순간순간의 시간이 천천히 아로새겨지는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제는 노예선 같던 9호선을 더 이상 타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 진짜 노예선에서는 서로의 똥오줌을 받아먹으며 생존하며 대서양을 건넜댔지. 빡빡하게 서로 대소변을 갈기며 상처를 주워 먹었던, 회사와 그 적들에 대한 미움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들도 그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마음이 힘들어 잠을 잘 못 자던 후배는 그때 일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겠지. 그래서 그렇게 잠수타고 날라버렸겠지. 임원들은 필드에서 고객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골프 TV를 보면서 아래 직원들을 쪼아 댔겠지.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이에 희미해진 내 자리를 다시 복귀시켜주기에는 상사도 난감했겠지. 그래서 나를 다른 부서로 쫒아버렸겠지.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돌려까던 메일과 빙그레 썅년이 난무하던 동료이자 경쟁자들은 지금 잘 다니고 있을까..


 다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마음이 이전보다 편안해지니 그럭저럭 옛일을 추억할 있게 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저녁 즈음의 공기 속에서 매일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들었던 글쓰기 수업의 작은 약속대로 하루에 두 줄로 작게 시작한 글쓰기를 이어가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첫걸음이 무척 어려웠지만, 머리가 아닌 손을 움직이다 보니 어떻게든 진행됐다. 탐색의 시간은 길고 고통스러웠지만 침묵의 시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작지만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나는 다시, 힘들었던 그때와 우아했던 치타를 생각해본다. 

마침내 회사를 정리하는 지금, 월급통장은 더 가벼워지겠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경쾌해질 것이다. 

나는 더 많이 웃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할 것이고, 생각 없이 그냥 한 번 해 볼 것이고, 사랑하는 내 진짜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더 많이 나눌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고민들을 덜어주고자 더 노력할 것이다.

버거웠던 그때, 언제나 나는 혼자라고 느꼈지만 돌아보니 많은 이들의 작은 도움과 보이지 않는 배려가 늘 함께 했음을 이제 안다.

다시 한번 세렝게티와 응고로고로 분화구를 가고 싶다. 

좀 더 가벼워질 그 때에는 정말로 게임처럼 게임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에는 검은 코뿔소를 보며 놀라워하고, 코끼리를 보며 박수를 치고, 치타를 만나면 심장이 뛰도록 휘파람을 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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