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존버실패기] #2
존버가 더 이상 어렵겠다는 사실은 몸이 계속 알려주고 있었다. 겨울 즈음 자주 눈물이 흘렀는데,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된 결과로 내가 우는 활동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 로켓이 지 혼자 발사되는 형국이었다. 남의 회사 복도에서 그러고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독서모임에서 발제할 때 급발진 조짐이 있어 황급히 다른 사람에게 순서를 넘기고 뛰쳐나온 적도 있다. 그 때 독서모임의 장소는 강남의 너무나 우아한 독립 서점이었는데 그 서점의 그랜드 피아노,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혼자 조용하거나 시끄럽게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된 1인 서재의 세련됨이 아직 기억난다.
어쨌든 나의 그런 모습을 남들이 봐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다행히 다른 팀과 회의를 할 때나 외주업체에 근엄하게 일을 시킬 때에는 눈물 발사가 잠시 멈췄는데, 바짝 일을 할 때에는 눈물 로켓보다 분노 미사일이 항상 더 힘이 셌기 때문이다.
몸의 신호는 또 있었다. 그건 정말 불편하고 짜증나는 신호였는데 무엇인가 하면….. 화장실에 너무 자주가는 것이었다. 낮에 왔다갔다 하는 것은 아주 그냥 기본이고, 퇴근 후 집에 가려고 횡단보도에서 멍하니 빨간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신호가 왔다. 아랫배를 툭!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내가 서있는 곳 반경 50미터 내 화장실이 있어야 했다. 다행히 퇴근길에는 큰 빌딩들이 있었고 그 안에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면 됐다. 그리하여 나는 주위에 있는 KT빌딩, 던킨 도너츠 건물, 스타벅스 2층, 약국 빌딩 지하, 국민은행 건물 왼쪽, 매드포갈릭 건물 구석의 화장실 위치를 속속들이 잘 알게 됐다.
해외에 가서는 화장실을 현지어로 적은 사진을 캡처해서 핸드폰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그 나라 말을 몰라 화장실을 못 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말은 통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닌 때도 있었다. 꿈꿔오던 파라다이스, 하와이 여행에서도 그 일은 일어났다. “where is restroom?” 얼마나 쉽고 명료한 언어인가!! 나는 “화장실 저 쪽에 있어” 또는 “나가서 왼쪽으로 가봐” 등등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들의 답변은 “응, 여긴 화장실이 없는데??” 였다. 없다고? 없다고!!
나는 재빨리 와이키키 맥도날드를 튀쳐나와 초조하게 사거리 신호등을 기다리며 주위 거리를 훓었다. 큰일났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플립플랍을 따각거리며 나는 뛰듯이 걸었다. 왼쪽에 다소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호텔이 있었고 오른쪽에 삐까뻔쩍 화려한 호텔이 있었다. 오른쪽 호텔로 가려면 더 걸어야 했는데, 나는 방향 따위를 바꿀 정신이 없었으므로 그냥 오른쪽으로 좀 더 가는 길을 택했다. 아주 고급 호텔로 보였기에 입구에서는 걸음 속도를 좀 줄이고 애써 우아한 척을 잠깐 했다. 마침내 발견한 화장실 픽토그램. 나는 그곳을 향해 빠르고 빠르게 달려갔다. 돌아서서 나오는 길, 화려한 생화 장식 옆을 지나쳐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후우우우 날숨이 길게 나왔다. 나중에 보니 왼쪽의 작은 호텔에도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곳은 투숙객만 사용할 수 있게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곳이었다. 거길 갔으면 어쩔 뻔했나!! 다시 생각하기 싫다.
(이른아침, 문제의 그 와이키키 해변길)
예전에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하신 강원국 작가님의 책을 읽었는데 작가님이 청와대에서 일 할 때 과민성 대장으로 갖은 고생을 하신 에피소드가 나온다. 나는 그 부분을 웃으면서 읽을 수 없었다.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는 중에 신호가 오는 그 상황을, 국빈들과 함께 평양으로 가야 하는데 중간에 멈출 수도 있겠다는 그 불안을,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는 그 이야기를 나는 재미로 읽을 수 없었다.
강원국 작가님은 아실까. 내가 급 신호가 와서 힘들 때마다 작가님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 것을.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으면 그게 몸으로 아우성치며 나타났을까’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것을. ‘그래, 그래도 나는 큰 건 아니고 작은 거잖아. 그나마 다행이잖아..’ 생각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