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난 May 18. 2023

아들의 죽음을 모르는 엄마

이래저래 비극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기 시작했다.

'니가 누구니?'

'누구 딸이라고?'

'언제 이렇게 컸어.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다.'


만나자마자 시작된 질문은 헤어지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무한루프로 이어졌다.


치매였다.

처음엔 몇 가지를 기억 못 하다가 몇십 개.. 몇백 개.. 기억 못 하는 게 늘어가고 기억할 수 있는 걸 헤아리는 게 빠를 지경이었다.


2남 2녀의 자식들을 알아보는 것조차 오락가락하던 즈음.. 할머니의 장남이었던 아빠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할머니가 충격받으실까 봐 작은 아빠와 고모들은 그 사실을 숨겼다. 할머니는 간간히 궁금해하던 큰아들의 이름도 점점 잊어버렸다.


"ㅇㅇ이? 그게 누구라고?"


1년 후 큰아들이 없는 큰아들집에 잠시 들른 할머니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둘째 아들(나에게는 작은 아빠)이 말했다.

"엄마, 이 사진 형이잖아."

"누구?"

"엄마 큰아들, OO이라고."

"OO이?!......."


그 순간 할머니는 '에구... 어떡하니.. 어쩌니...' 하며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슬펐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할까. 그 옆에 있던 나도, 엄마도 울었다.


몆 분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다시 묻는다.

"저 영정 사진은 누구니?"




아주아주 먼 옛 기억 속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69세의 아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 아들은 어리다고. 저렇게 늙은 중년남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할머니는 몇 번을 충격받고 몇 번을 슬퍼하고 몇 번을 까맣게 잊기를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치매는 나날이 심해져서 나중에는 같이 살던 자식들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거실에 앉아있다가도 자신의 아들에게 자기를 집에 바래다달라고, 자긴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방에 들어가 주무시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아저씨,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예요?'라고도 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몇 년을 더 사셨다.


그리고 요양병원에서... 응급실로... 중환자실에서... 영안실로... 할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이제 할머니는 다시 기억을 되찾아 먼저 하늘나라에 가 있던 큰아들을 만났을까.

기억을 못 해서 못 알아봤을까.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는 걸 아는 게 슬픈 걸까.

그조차 기억 못 하는 게 슬픈 걸까.



오랫동안 지켜봐 온 비극이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