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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Aug 12. 2023

당신의 최애 공간은 어디인가요.

힐링이 필요할 때, 그곳으로 갑니다.

우리 엄마는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한다. 굳이 뭘 사지 않더라도 마트의 진열대 사이를 구경하며 걷는 걸 즐기고 가끔 그 안에서 깜짝 세일 품목이나 1+1을 찾아내면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역시 엄마가 복이 많잖니~'하며 기쁨을 만끽한다. 더운 날은 더워서, 배가 부른 날은 소화시킬 겸 마트에 가신다.


동생은 카페를 좋아한다. 요즘은 점심 먹고 카페 들러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게 너무 일상적이지만, 스타벅스에 가면 된장녀 소리를 듣던 시절 이전부터 동생은 카페를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주말 아침에 늦잠자기보다는 뷰가 좋거나 커피맛이 좋은 카페를 찾아가는 걸 선택한다. 


남편은 특별히 최애 공간이 없는 것 같다. 눈에 띄게 특별히 자주 가는 곳이 없다. 아, 종종 퇴근하고 집에 안 들어오고 차에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쪽잠도 잔다.(집에 들어오기 싫은가 보다.) 예전에 한번 부부싸움하고 남편이 가출(?)한 날, 나중에 어디 갔었냐고 물어보니 차에 있었다 했다.(이건 최애 공간 이어서라기보다는 그저 피난처인 듯도 싶다.)



※ 최애 最愛
'가장 사랑함'을 뜻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준어 단어.



집을 제외하고 나의 최애 공간은 도서관이다.

거의 매일 간다. 하루에 몇 번도 간다.

도세권(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있는 주거권역)에 살고 있다는 걸 자랑으로 생각한다.


개방된 큰 책상도 1인용 작은 책상도 그날의 기분따라 선택할 수 있다.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서가를 이쪽저쪽 스캔하며 그 사이를 걷는 것부터 책 몇 권 뽑아 들고 사람 덜 몰린 자리에 앉아서 슬슬 읽어내리는 것까지. 좋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취식은 안되지만 음료를 마시는 건 괜찮고, 콘센트석은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충전도 할 수 있으며 오픈된 좌석들도 많으니 혼자 공부하기에 카페보다 낫다.(음료를 시키지 않고 몇 시간씩 있어도 눈치 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요즘은 도서관에 없는 책은 인근 도서관에서 책배달도 해주고 사용자 중심 서비스가 많아져 엄청 편리해졌다. 신간도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새책을 내가 제일 먼저 볼 수 있다. 빳빳한 새 책의 표지를 넘길 때의 기쁨이라니.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 봄가을엔 쾌적하니 도서관은 사시사철 성수기다. 특유의 차분한 공기가 참 좋다.


방학 때는 학생들도 아이들도 많아서 조금 정신없긴 하지만 그 덕에 학기 중 평일 오전시간의 한적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겠지.


창밖으로 뒷산을 볼 수 있는 나의 최애 자리 vs 틈새로 몸을 밀어넣어야 하는 아이의 최애 자리




직장 다닐 때는 퇴근하자마자 아이와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해 오기도 하고, 저녁 먹고 남편과 아이가 노는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러 달려가기도 했었다. 귀에 이어폰 꽂고 혼자 책 한 권 읽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그렇게 힐링될 수가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시도 때도 없이 도서관을 간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잡지도 보고 컴퓨터도 사용하고 문화강좌도 듣고 인문학 수업도 듣고 그림도 배우고 도서관 뒷문으로 뒷산 산책로 지름길까지 이용하고 있으니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너무 잦은 도서관 방문과 수업 참여로 도서관 관장님을 비롯해서 몇몇 사서쌤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다.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얼굴 알아보고 인사하게 됨)


쾌적하고 편안한데 무료이기까지 하니 백수에게 이보다 더 혜자로울 순 없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대충 집정리를 한 뒤 슬렁슬렁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이만하면 성공한 삶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니, 내가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인 게 분명하다.


요즘은 어르신들도 도서관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정말 많다. 책 읽고 계신 어르신들 보면 괜히 막 멋지고 폼난다. 나도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계속 도서관에 출석도장을 찍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우리 도서관이 개관을 했고 그때 이후로 24년째 애용하고 있으니 이변이 없는 한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누구는 여행을 가면 근처에 있는 헬스장을 꼭 간다는데, 난 요즘 어디를 갔을 때 시간이 있으면 근처에 있는 공공도서관을 찾아가 본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설을 가진 곳도, 요즘 도서관 같지 않게 낙후된 곳도 있었는데 좋으면 좋은 대로, 낡으면 낡은 대로 나름의 매력이 있다.


힐링이 필요할 때, 생각이 많을 때, 아무 생각하기 싫을 때 나는 도서관으로 간다. 



당신의 최애 공간은 어디인가요?


가끔은 옆동네 도서관으로 원정을 떠난다.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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