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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바레스코 Aug 13. 2020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이기적인 유전자

 유전자의 타협,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자식에게 발현되게 할 유전자 보존방법이 필요하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이 확실하다면, 자식 유전자의 이기성과 부모의 입장에서 종족번식의 최적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전자의 이기성 간에 타협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만을 챙겨주길 부모에게 기대(동생이 생기기 전까지)한다. 그러나 부모의 유전자는 유전자 보전의 최적화의 측면에서 일정 수준이 되면 첫째를 독립시키고 둘째의 유전자를 보호한다(개체가 유전자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첫째의 유전자가 과연 그 특정 유전자의 보전을 위해 둘째 유전자에 부모가 투자하는 것을 용인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둘째 유전자의 보전이 자신의 유전자 보전에 해가 되지 않으며 부모의 둘째 유전자에 대한 투자가 자신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보다 유전자를 보전할 확률이 높을 경우에만 부모의 투자를 용인할 것이다. 이에 부모는 최적화된 유전자 보호를 위해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이 어떠한 방향으로 기능할지, 그 유전자 안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체의 이기성을 야기하는 그 유전자를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할 수 있을까. 인간의 행동은 이타적으로 보이던 아니던 이기적이라는 게 필자의 논리다. 사회현상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유전적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이기적 유전 자안에 다른 개체의 이기적 유전자들과 상호교류를 통하는 것이 개체의 유전자 보전에 가장 이롭다는 유전적인 정보 혹은 검증된 확률론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의 조상이 같다는 전제하에 이 논리는 성립될 수 있다. 조상의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할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본능화 했을 것이다.


 위 문단의 논리를 반영해 해석해보면 부모는 자식 유전자에도 그러한 본능이 내재되어 있는지 확실하지 않기에 사회적 이타성을 자식에게 가르쳐야만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이타성이 흔히 말하는 양심과 법감정, 도덕 감정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유전자 결정론은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수많은 반례가 있기에 크게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위 주장을 사회적 현상에 반영해보면 유전자의 이기성이 그 자신의 이기성을 최대화한 사회적인 이타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이타성은 사회윤리가 유전적인 혹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평가받을 여지를 열어둔다. 


 사회윤리에 대한 주류 논리는 후천적인 교육과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집중하여,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윤리에 미치는 영향을 등한시 한 경향이 없지 않다. 이에 비해 진화론적 관점이나 유전적 선택론은 사회윤리학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지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안전성을 위해서 이기성을 얼마나 절제할 수 있을지, 즉 최소한의 윤리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 개개인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려 하므로 사회를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 감정에만 의존하여 윤리질서를 확립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제제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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