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 그 첫 번째 : 사람이 책을 쓰고 사람이 읽다
지난 글까지 독서를 하기 힘든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독서가 힘들지만 그래도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일 것입니다. 저는 이제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독서는 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께도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왜 책을 읽으려고 하십니까?
아마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독서가 왜 좋은 활동인지 이미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서가 좋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의외로 독서가 왜 좋은 활동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가 생각하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서를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어이없게도,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제시할 다른 두 가지 이유를 아우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은 사람이 쓰고 사람이 읽습니다. 독서를 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사람인데, 사람을 왜 이해해야 하냐고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미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관계의 문제들,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부조리한 구조들이 훨씬 더 적었을 것입니다.
연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 남성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현재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이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저에게 토로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물었습니다.
“여러 어려움을 겪으셨군요. 이런 어려움을 겪은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그 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자친구와 제가 너무 다른 사람인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잘 맞지 않아요. 그게 근본적인 원인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제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려고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조금 놀랐습니다. 잠시 생각한 뒤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 여자친구와 본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사귀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계셨나요?”
남성분은 제 말에 놀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이죠.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존재할까요? 전혀 그렇지 않지요.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와 같을까요? 닮은 부분은 모자간에 당연히 있겠지만, 저와 어머니가 같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같은 사람이어서? 전혀 아니지요. 우리는 원래 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그렇게 만나고 사귀어 친구가 된 것이죠. 처음부터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위의 경우에서, 저 커플의 문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남성분은 자신과 여자친구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둘이 다른 게 문제였다면 위에서 제가 밝혔듯이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전부 문제가 발생해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으니까요. 저는 이 문제를 ‘의사소통’에서 찾았습니다. 모두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와 저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저 사람과 나의 ‘다름’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친밀한 관계에서는 나와 타인의 다름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더 깊은 관계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깊이 이해하고, 질문하고, 배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 커플의 경우에는 이런 관계가 되는 데에 실패한 것이죠. 의사소통이 잘 안되다 보니 서로의 다름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장애물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죠.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보게 됩니다. 수능을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 시험이 굉장히 큰 난관이라고 느끼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수능 정도의 난관은 우리 삶에서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인생에서 이보다 훨씬 어려운 난관은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때 수능을 왜 그렇게 두려워한 것일까요? 그냥 공부가 싫고 시험 보는 것이 싫어서 일 수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쑥쑥 큽니다. 특별한 노력을 한 적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초등학생이 됩니다. 8살이 되면 자동으로 가는 것이죠. 그리고 6년이 흐르면 이제 중학생이 됩니다. 또 3년이 흐르면 고등학생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중간에 시험을 보고 학교의 진도를 쫓아가고, 학원 숙제를 하는 데에 스트레스를 좀 받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는 17세까지 우리는 신분이 꽤 많이 변합니다. 최소 어린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4번은 변하죠. 그러나 특별한 학교를 가려고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신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교육과정에 따라 자동으로 나의 신분이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19살이 되고, 11월에 수능을 보게 될 때는 다릅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려면 ‘시간의 흐름’말고도 다른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수능은 대한민국의 환경에서, ‘신분의 변화’를 위해 내 인생에서 겪게 되는 최초의 시련입니다.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신분이 변했는데,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대학생이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자동으로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우리를 기다리는 취업은 더더욱 그렇죠. 이후 어른이 되어서 겪는 무수한 일들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든 되겠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해집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우리는 때로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낸 어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죠. (간혹 모르는 어른들도 있기는 합니다.) 수능은 ‘어떻게든 되겠지’가 안 통하는 첫 번째 사건인 것입니다.
독서와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좀 길게 했네요. 위의 두 이야기, 제 주장에 어느 정도 설득이 되셨나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가 아닙니다. 제가 위 두 이야기를 들려드린 이유는, 제가 두 케이스에서 저런 주장을 한 ‘근거’가 어디서 비롯됐냐는 거죠. 저는 주장을 탁월하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 나름의 ‘인간 이해’를 통해 저의 주장을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커플의 케이스에서 저는 어떤 인간 이해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일단 첫 번째는 ‘인간은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격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다 알려고 노력해도 절대 다 파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격은 기계처럼 투입과 산출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자친구에게 100을 투입해도 산출은 10만 될 수도 있습니다. 거꾸로 나는 10만 줬는데 상대가 나에게 100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모습이 인간의 특징입니다. 제가 커플의 문제를 ‘의사소통’으로 진단한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격은 다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니까 당연히 ~~일 거야’라고 속단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타인의 인격을 매우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죠. 예측 불가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100을 넣었는데 10만 받았다면, 이것에 대해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둘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대화함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저의 이해입니다.
두 번째, 수능이 힘든 이유를 설명드렸었죠. 저는 어떤 인간 이해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바로 ‘어린이와 어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다름을 ‘책임’에서 찾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만 흐르면 자동으로 되는 일이 있지만, 어른이 되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죠. 책임은 어른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이 돌봐 줍니다. 다시 말하면 어른이 어린이 대신 책임을 져 주는 것이죠.
그러나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누가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해 하나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책임의 용량’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어린이의 몫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이유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착실하게 자신의 ‘책임의 용량’을 늘려 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른이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가지고…. 철이 없구먼….”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합니다. 여러 사람과 만나고 친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한 사람을 만나 정말 깊게 만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혼란을 겪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지?(사실 우리 어렸을 때 다 해봤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까먹은 겁니다.) 지금 이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지? 분위기가 안 좋은데 내가 어떤 말을 하면 분위기가 풀어질까? 사과를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내 말을 과연 들어줄까? 사과를 해도 상대방이 안 들어주면 어떻게 해야하지? 관계를 정리하는 수밖에 없나?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엄마가 좋아하실까? 등의 질문들은 모두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대답을 하려고 생각하시면, 생각보다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위에 질문들에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책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해 작가가 이해한 바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비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기계나 과학, 컴퓨터 프로그램과 관련된 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스마트폰 어플 만드는 법을 설명한 책보다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 쓴 소설이 인간 이해에는 더 유리한 책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사람이고, 프로그램 만드는 법을 만든 것도 사람이고, 프로그램 만드는 법을 책으로 적은 것도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프로그램 하는 법이 다를 수 있고, 하는 법을 알려주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프로그램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도 다를 수 있습니다. 작가가 꼭 책에 ‘인간은 이런 것이다!’라고 글로 쓰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작가가 이해한 인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직접 만나면서 내가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맺는 관계의 폭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러나 책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외국인이 쓴 책을 보면 그 나라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모습을 더 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통점을 찾는 활동을 통해서도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옛날에 쓰인 책을 보면 지금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동일한 인간의 모습도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나,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사람을 실제로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는 만나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일을 벌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또 인간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서를 통해 우리는 동서고금의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안긴 이해의 폭은 넓어지겠지요.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도 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히어로 영화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배트맨에겐 알프레드가 있습니다. 아이언맨에게는 페퍼가 있죠. 우리가 인간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간 이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우리의 삶을 위해, 나의 존재가 나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행복이기 위해, 우리는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독서는 그래서 해야 하는 활동입니다. 독서가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