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사람콤플렉스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실존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상황같은 모호한 것이라도 말이다. 최근에 나에게 발생했던 몇가지 일들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나가야 하는 것에 지장을 받지않고 덤덤하게 고민하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 고민의 끝에는 정답과 상관없이 머리가 맑아지는 나름의 결정이 기다리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로 내가 내린 결정은 내 모습을 솔직하게 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내 감정을 타인에게 맞추고 있지 않은가.
남에게 좋은 사람이기 위해 내 감정들을 속이는 버릇이 있지 않은가.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타깝게도 '네'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증상과 꽤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자세히 찾아봤더니 내 우울의 시작이 여기서부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든다. 의젓함을 강요받고, 부모님 얼굴을 먹칠하지 않는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같은 것이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고, 지난 시간동안 이유도 주체도 없이 그냥 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처음 우울증센터를 찾았던 게 23살쯤이었는데, 상담사를 만나서 했던 첫 질문도 '내가 이러한 경험을 했는데 화가 나는 게 맞는 걸까요?' '분노를 느끼고 서운함을 느끼는 게 맞는 걸까요?' 같은 감정의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내가 화가 난다고 느끼면 그대로 화를 느끼면 되는 것인데 화를 내도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타인의 감정부터 보듬으려고 했었다. 그러한 습관때문이었는지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사랑을 받았고, 내가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고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이 진짜 나였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와 시간을 보낼 때 내가 하고싶은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게 어렵다. 그 이유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그 사람과 함께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시간을 쓰는 것은 아닌지 같은 고민을 하고, 그런 마음이 불편해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포기하는 쪽이 편한것이다. 다정함과 친절함은 타인을 위한 지능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 이전에 내가 없으면 그건 허물에 불과하다. 최근에 문득 궁금해서 애착유형 검사를 했는데 회피형 유형이 나왔다. 아마 이러한 내 습관과 연관이 완전히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관계에서 나는 없고, 타인만 있으니 애초에 나에겐 타인의 존재 자체가 진심으로 닿을 리가 없다. 불편하면 언제든지 도망가면 되는 그런 것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내 모습들을 바꿔가는 시간들을 갖겠지만 솔직히 당장은 다정함과 착한아이콤플렉스 그 차이를 정확하게 분별 해 낼 자신이없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할 거라는 걱정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뭐든 관성을 거스르면 잡음이 발생하겠지만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잡음이 걱정되어 그대로 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용기를 낼 시간이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