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Mar 21. 2022

검은 옷만 입는 사람

살아있음을 숨기고 싶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봐"


"..."


친구의 물음에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 3년간 검은 옷만 입기로 결심했다. 


엄마의 장례식

행복을 느끼지 못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였나. 아니, 그 전부터였다. 하지만 그때 조금 더 확실해지기는 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다시는 웃지 않겠다'라고 결심했으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의 가족은 유력한 용의자다. 혹시 모를 살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부검해야 하므로 부검이 끝날 때까지는 사망자의 신체는 국가 소유다. 알리바이가 입증될 때까지는 조사가 진행되므로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형사들의 연락을 받아야 한다. 아빠는 경찰서에도 출석했다.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씁쓸하게 진술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이 엄마와 함께 있었다는 걸 문제시하는 게 속상했지만 경찰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싶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런 말들마저 상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라니. 내 일상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오라는 거지?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엄마가 살아 돌아오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장례식장에서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했다. C는 국과 밥을 떠주며 먹으라고 했다. 밥은 맛있었지만 씹을수록 죄책감은 커져갔다.


"지금 네가 밥을 먹을 자격이 있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너는 살겠다고 밥을 먹는 거야?"

"네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양심도 없구나"

"맛있어? 너 혼자?"

 

어깨가 무거웠다. 상주를 알리는 노란 완장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어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상주는커녕 장례식장에 가본 일도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다. 알려주는 어른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누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나에게 A는 이렇게 말했다.


"상주가 웃어? 죽을 상을 하고 있어도 모자랄 마당에?"


나는 내가 웃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다만,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합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죽은 순간 나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었으나 살아있으므로 할 수 있는 건 사람처럼 보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장례가 끝나고 몇 달 후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A는 우리 가족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 모든 게 우리 잘못이구나. 내 잘못이구나 싶었다. 웃을 수도 없고, 웃어서도 안 됐다. 행복할 수 없었고, 행복해서도 안 됐다. 그 이후로는 맛있는 먹다가도, 재밌는 보고 웃다가도 그런 모습이 어색해 정색했다. 자동적으로 "내가 미쳤구나.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웃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봐"


"..."


친구의 말에 다시 머릿속을 휘적여봤지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전혀 없었다. 머릿속에 손을 넣고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어봐야 불행했던 순간만 걸려들 뿐이었다. 행복은 부스러기도 없었다. 그래서 침묵을 지켰다. '너랑 같이 여행 갔을 때?'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건 거짓말이었으니까. 친구가 좋아할 만한 말을 역으로 계산해서 머리로 내놓은 결론이므로


그랬다. 누군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일 뿐이었다. 남들이 사람들과 있는 시간이 좋다고 하니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인간실격으로 취급하니까. 나도 그런 것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진심으로 행복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의 불안과 우울을 들킬 것만 같아서 안절부절이었다.


친구는 함께 게임을 하며 땀을 흘렸던 순간을 즐거웠던 시간으로 꼽았다. 그리고 기억에 나지 않는 다른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분명 나와 함께 했으나 내 기억 속에서는 사라진 시간들. 내 삶에서는 사라지고 네 추억으로만 남은 순간들. 나는 애써 기억이 나는 척 '응응', '그렇지' 대답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내 친구는 그 시간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게 부러운 동시에 야속하기도 했다.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순간에도 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걸까'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아주 가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함께 몰려오기 마련이었다. 


"네가 행복해도 돼?"

"네가 행복할 자격이 있어?"


그런 목소리가 여전히 울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