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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호숲 Dec 19. 2020

고양이 산책

태리야 제발 놀아줘

산책하는 고양이


퇴사 직후, 집사 레벨 0에 사냥놀이 초짜였던 나. 내가 태리에 대해 확실히 아는 건 단 하나였다. 태리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아무리 비싼(눈물) 신상이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태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꼿꼿이 앉아 '뭐야 저게'라는 식으로 싸늘하게 장난감을 무시할 때마다 어찌나 가슴(통장)이 아프던지....


여느 날처럼 태리는 놀이에 무관심했고, 타개책이 없어 꽉 막힌 내 마음만큼 얽히고설킨 장난감을 풀어헤치면서 어떤 게 성공률이 높을까 고민했다. 개중에 제일 타율이 높은 깃털 장난감을 솎아 서커스 조련사처럼 스킬을 대방출했다.


태리 옆으로 뒤로 앞으로 위로 휙휙휙. 곧바로 태리는 마장마술 부리듯 현란한-아니, 태리는 오늘도 관심이 없다. 두어 번 구르다가 일어나 먼 곳을 응시하다가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귀여운 눈빛으로 간식을 달라고 졸랐다.


고양이는 편하게 집 생활하려고 외모가 진화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여운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태리는 진화의 정점에 이른 듯하다. 너. 무. 귀. 엽. 다. 다이어트고 놀이고 내팽개치고 간식을 사발로 바친 뒤 같이 구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이면 태리는 뚱보에서 뚱뚱보가 되고 뱃살이 늘어질수록 다리에 무리가 가서 관절염이 생기겠지(심지어 태리는 다리가 가는 편). 그 외에도 비만으로 인해 무수한 질병에 노출될 텐데? 병원비가 몇 백만 원씩 들 거고. 어쩌지? 나는 백수인데...?




그러니까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네가 아무리 귀여워 봐라, 이번엔 안 진다!라는 마음으로 장난감을 휘둘렀지만 귀여움엔 장사 없다. 나의 패배다. 간식을 그냥 줄 수는 없으니 놀이 대신 이빨, 발톱 만지기 훈련을 하고 간식을 상납했다.


허탈하다. 나의 돈과 노력은 어찌 이리 무용한가. 바닥에서 구르던 태리는 일어나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에라 모르겠다, 사냥놀이는 포기해도 걷기 운동이라도 하자 싶어 장난감을 등 뒤에 숨기고 따라다녔다. 태리는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뒤따르는 나를 보더니 꼬리가 천장을 찌를 듯 바짝 섰다. 부르르 떨기도 했다.


꼬리 메시지를 믿기로 했다.


평소엔 닫혀 있지만 나나 남편이 오갈 때 이벤트처럼 열리는 세탁실 앞에 태리가 섰다. 나와 문을 번갈아 본다.

문 열어 줘? 끼익.


태리는 꼬리를 내렸다 올렸다 하며 천천히 세탁실을 탐색했다. 즐거워 보였다. 그런 식으로 놀이(를 시도한) 시간만큼 집을 산책했다. 집을 한 바퀴 돌고 태리가 다시 세탁실 앞에 가 애원하는 눈빛을 비쳤다. 꼬리는 아까보다 살짝 내렸다. 혹시 산책이 끝난 건가 싶어 등 뒤로 숨겼던 장난감을 흔들었더니 태리는 사바나의 암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우와. 대성공.


고맙고 미안하고 고마워


회사 다닐 때 집에 혼자 있는 태리가 걱정돼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CCTV를 설치한 적 있다. 회사에서 틈날 때마다 봤는데, 오래 못 보겠더라. 작은 화면 속 태리는 내내 같은 자리에서 앞발로 눈을 가리고 잤다. 영역 동물답게 구석구석 정찰하리라 예상해서 모든 방과 복도에 CCTV를 설치했는데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태리는 미동도 없었다. 그 모습이 마음 아파 며칠 만에 기기를 전부 치웠다.


중국에서 살 때 외할머니가 집에 한 달간 와 계셨던 적이 있다. 언어도 모르고 친구 없는 곳에 오신 당신은 많이 적적하셨을 것이다. 엄마는 교회 일로 바쁘고 아빠는 인근 도시에서 일하느라 주말에만 왔고, 사춘기였던 나와 두 동생은 할머니랑 보낼 시간이 없었다. 하루는 뭐하시나 궁금해서 문턱에서 보니 오래도록 뒷짐 지고 창가에 서 계셨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이제는 알 방법이 없지만 그때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서 도저히 곁에 갈 수가 없었다. CCTV 속 태리가 자는 모습이 그 뒷모습과 겹쳐 보였다.


산책하는 동안 신난 꼬리를 보며 태리는 사냥놀이보다 미루어 둔 집 정찰부터 나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퇴근해야 태리의 하루가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반려동물은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라고 반려인과 전문가가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일을 하든 취미활동을 하든 사람을 만나든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더 나은 환경을 못 만들어 줘서 미안하고, 아이가 싫어하는 양치나 발톱 깎는 걸로 스트레스 줘서 미안하고... 한없는 미안함이 뭔지 반려동물이나 아이를 키운 적 없는 나는 몰랐다.


긴 시간 외출해 혼자 있게 했는데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몸으로 날 매번 용서하고, 환경이 조금 모자라도 잘 지내고, 목욕시키고 양치를 억지로 해도 참아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어쩔 줄 모르겠다. 미안했다 고마웠다 마음이 널뛰기한다.


이렇게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아 늘 태리한테 미안하다. 태리한테 받은 것보다 더 주는 날이 올까? 태리한테 진 마음의 빚은 오늘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나마 얼떨결에 '선 산책 후 사냥놀이'가 성공하고 이자라도 갚을 희망이 보였다.


태리가 사냥놀이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할 때 같이 집 산책부터 한다. 산책시간은 집이 백 평이라도 되는 양 길 때도, 고시원 방 둘러보듯 짧을 때도 있지만 산책이 끝나고 사냥놀이를 하면 거의 항상 잘 논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과하고 다짐한다.


여태 몰라줘서 미안해.


우리 매일 집 산책하자, 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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