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혁 Mar 19. 2024

구례, 그리 쉽지는 않겠지 ①

이번엔 촌캉스다! 또 홀연히 떠난 이유


작년 여름, 홀로 제주도 글쓰기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엔 시골(村)로 떠나보려고 한다.

(지난 제주도 글쓰기 여행글: 발길 따라 제주 넘은 이야기 ① (brunch.co.kr))


굳이 왜 시골로 떠나느냐고 묻는다면 일종의 디톡스가 필요했달까.

강남 직장생활이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드니, 온갖 것들이 들러붙어 뒤룩뒤룩 몸을 불렸다.


회사에 다닌 기간만큼 자연스레 많아진 회식 자리와 스트레스를 해소한답시고 합리화하며 즐기는 자극적인 식단, 역시 같은 이유로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게으름 때문에 체중은 점점 불어났다.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업무 관계자들과 즉각적인 연락을 취해야 하는 홍보 직무 특성도 한몫했다. SNS를 비롯한 핸드폰은 쉴 틈 없이 불탔다. 언젠가부터는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지 않으면 불안한 지경까지 왔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만약 배터리가 70% 아래로 떨어진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더하여, 이곳은 강남이지 않은가! 사무실 창밖으로는 빵빵 경적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온 도심을 메우고, 도대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대로변에 쏟아진다. 애매한 오후 시간대에도 카페는 문정성시를 이루고, 오후 4시 30분경부터는 지하철 탑승 계단까지 사람이 가득 찬다. 해 질 녘 퇴근길은 온통 불바다다. 붉은 노을 때문은 아니다. 새빨간 차량 브레이크등이 온 세상을 점령한다. 밤에는 취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그로 인해 되레 심야시간 대중교통에는 일반 시민이 아닌 좀비(zombie) 떼가 가득해 '쉽지 않은' 사투를 벌여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이곳 회사에서 3년 차에 접어드니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과 부담감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후임에게는 멋진 선배가, 선임에게는 믿음직한 팀원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강해지고, 반대로 회사에 적응함에 따라오는 매너리즘도 슬슬 경계됐다. 주변에서는 괄목한 만한 성과를 내는 직장 동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회사 차원에서 바라보는 3년 차 직장인에 대한 기준도 점점 높아짐을 새삼 체감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되레 추진력에 힘입어 앞으로 줄곧 나아가야 하는 시점임에도 몸이 꽤나 무거웠다. 가끔은 그 기분에 압도당해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공감되는 독자분들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큰 일을 앞두고 무엇인가 경직되는 느낌, 혹은 할 일이 태산임이 눈앞에 보이는데 그것에 압도당해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 답답함을 말이다. 말 그대로 '쉽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문득,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고 싶었다.

어김없이 축 처진 몸을 실은 닭장 같은 2층 퇴근 버스 안.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그러자 신기하게 눈앞에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아무도 없는 곳, 풀벌레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들숨날숨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말이다. 쿰쿰한 흙냄새와 윙윙 귀를 간지럽히는 꿀벌 소리, 약간의 모래가 묻어있는 툇마루와 처마 끝에서 흔들리는 풍경(風磬)이 느껴졌다. 덩굴 담벼락 밖으로는 컹컹 짖는 똥개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고, 진분홍색 계열의 외투를 걸치신 동네 할매들이 쓱쓱 신을 끌며 산책하는 그런 모습. 꼭 문은 요란하게 소리가 나는 양철문이었으면 좋겠고, 방 안에는 오래된 카세트와 전기장판이 깔려있으면 한다.


아! 바깥에는 불을 때거나 밤에 장작을 태울 수 있는 드럼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앞에 자리를 펴놓고 술을 곁들어볼까. 아니면 그동안 밀린 만화책을 읽어볼까. 그리고 한 끼 정도는 직접 음식을 해먹어보고도 싶다. 음, 요리를 잘 하진 못하니 밀키트를 가져가서 직접 해 먹는 느낌을 내봐야겠다. 너무 벌레가 없어도 섭섭하다. 파리 몇 마리 정도는 계속 신경을 긁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다 슬 잠드는 거지.



다시 눈을 떴다.

지금쯤이면 닭장 같은 3102번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됐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을 떠보니 전라남도 구례에 도착해 있었다.

덜렁 배낭 하나와 함께 말이다.


- 다음 편에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