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저는 독일 가서 살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안 살아도 되고 돈 벌어서 여행도 다니고.”
학생은 건축가가 꿈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 독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독일 여행 가서 만나자고 했다.
“돈은 벌 만큼 벌어요. 여기서는 소비를 하지 않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백화점도 가고 소비를 해봤지만 저랑은 안 맞아요. 사고 싶은 게 별로 없어요. 독일에서 1년 살았는데 편하고 좋았어요. 독일 사람들은 확실히 소비를 덜 하는 것 같아요.”
나름 고위 공직자임에도 명품은커녕 머리 염색도 않은, 무채색 옷차림의 후배는 왠지 독일과 어울린다.
“독일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유럽 여행을 좋아하는데 독일은 또 가고 싶어요.”
언제나 긍정적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좋은날 님은 독일의 예술, 교양과 잘 어울린다.
주변에 독일을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독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 우연의 중첩이 『나는 독일인입니다』의 책장을 열게 만들었다. 그래픽노블은 자칫 그래픽에 치중하면 이야기가 빈약하고 노블에 치중하면 그림은 정신만 산만하게 만들어 없느니만 못한데 이 책은 그래픽노블로 더할 나위가 없다.
1977년생인 작가는 전후 2세대로 68혁명 이후 독일에서 이루어진 교육개혁 세대다. 히틀러가 사람들을 어떻게 선동했는지 연설문을 분석하는 등 이 세대들은 그들의 (조)부모 세대가 국가 혹은 민족의 발전을 명분으로 어떻게 학살과 만행을 저질렀는지 상세히 배웠다. ‘나’는 가슴 한구석에 (외)(조)부모가 나치에 부역한 전범일지 모른다는 불안과 죄의식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 나라를 사랑할 수 없고 공동체에 일체감을 느낄 수 없어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작가는 용기를 내어 가족의 역사를 추적한다. 나치에 부역한 할아버지의 치부가 드러날까 조마조마한 작가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저희 할아버지에 관한 미군 파일을 찾는데요.” 희귀유전병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온 기분이다. “파일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기록보관소 담당자가 나를 안심시킨다. … 기록보관소 담당자의 손가락이 키보드에 ‘빌리’라는 이름을 친다. “저도 얼마 전 우리 할아버지 파일을 뽑아봤는데 나치 친위대 소속이셨어요.” 짧았던 안도감이 사라진다.
책에 빨려 들어가 독일인의 내면을 엿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동안 작가의 불안함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느낀다. 학살을 당하기도 하고 학살에 동조하기도 한,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청산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80cm가 넘는 장골인 나의 아버지는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특급을 받았는데 입대 직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덤프트럭에 들이받혀 군대 대신 병원으로 실려 갔다. 1년 반 동안 4번의 수술을 하고 겨우 걷게 되었는데 예정대로 입대했다면 백골부대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거라 했다. 학살 주범이 되었거나 동조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작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삼촌의 마지막 모습, 1944년 1월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사진을 보게 된다.
삼촌의 모습이 변한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삼촌의 얼굴에서는 부드러움이 사라졌다.
17살에 나치 군인으로 징집된 삼촌은 18살 이탈리아에서 전사한다. 작가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찾아서,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지금은 알고 있어서 기쁘다’며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할아버지가 나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의식은 이미 작가의 정체성의 일부이다. 예민하고 정직하며 용감한 또래 독일인의 내면을 만나는 뜻깊은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나는 독일인입니다’라는 짧은 말에서 깊은 성찰과 진심이 묻어난다. 이보다 아름다운 책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