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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May 09. 2024

여행을 상상하는 즐거움

독일 유학파인 철학 교수가 말했다. 독일 사람들은 우리가 보면 지루해보일 정도로 일상을 반복한다고. 퇴근 후 대다수 남편들은 차고에서 정비를 하거나 나무를 깎거나 뒷마당에서 가까운 이웃과 바비큐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짜여진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 해는 물론 10년 뒤 누구와 어디를 갈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심지어 2학년 담임이 독일어 남자 선생님이었다. ‘구텐모르겐~’ 성악가의 발성을 흉내내며 안 아우프 힌터 인 레벤을 노래로 가르쳤다.(헉 진짜 성악가였을지도) 독일 사람을 보진 못했지만 각진 얼굴에 건장한 체격, 여고에 갓 부임한 미혼남, 즐거운 독일어 시간. 독일어 시간 선생님은 항상 독일어로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정관사 부정관사를 외웠다. 선생님의 기세 대로라면 정관사, 부정관사를 다 외우면 독일어를 다 배운 것이어야 하는데 글쎄. 신승훈이 ‘이히 리베 디히 암 모르겐’으로 독일어를 더 잘 가르쳐버리고 말았다. ‘라때는 말이야’라며 50분을 옛날 이야기로 떼우신, 아이들은 이야기에서 배운다는 고도의 교육 철학을 자신도 모르게 실천하신 국어 선생님처럼 ‘독일에는 말이야’로 50분을 떼웠으면 어땠을까. 그때가 1990년이니 어쩌면 선생님도 독일에 가본 적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독일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해보았으면 좋았을 걸. 



‘나마스테’는 네팔과 인도에서 쓰는 인사말이다.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손바닥을 모으는 순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는 의미다. 126개 민족, 다언어, 다종교 사회인 네팔에 민족 갈등, 종교 갈등, 계급 갈등이 거의 없는 게 나마스테 정신 덕일 수도 있다. 존중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네팔 사람들. 


네팔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정확히 말하면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검색해보고 갈 궁리를 세워본다. 비행기 사고나 실족 사고가 무섭기도 하고 여름방학은 거머리가 들끓는 우기라 엄두가 나지 않아 야생화 만발한 평화로운 히말라야 사진을 보는 걸로 마음을 접었다 폈다를 여러 번.      


네팔에서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들이 산에서 산다고 믿는다. 그중에서도 히말라야는 시바 신이 살며 명상을 했던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신성한 곳이다. … 네팔 사람들에게 산을 오르는 행위는 신들의 머리를 밟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는 함부로 가면 안 된다. 히말라야 등반은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트레킹을 할 때 한 가게에서 밥을 먹으면 가게 주인이 차는 다른 가게에 가서 마시라고 권한다. 우리는 밥을 팔아서 충분히 돈을 벌었으니 차는 다른 곳에서 팔아 달라는 이야기다.      


히말라야를 보러, 힐링하러 네팔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고 착한 네팔 사람들을 보고 다시 온다고 한다. 버킷리스트를 살짝 수정해야겠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아니라 네팔에서 네팔 사람들 많이 만나보기로. 

유튜브에서 독일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고 『지극히 사적인 네팔』을 읽는 동안 나의 우주는 독일과 네팔을 여행하며 자유롭고 행복하다. 그냥 하는 일, 꼭 해야 할 일, 미리 해놓으면 좋을 일, 기타 등등 온갖 종류의 일을 하고, 일에서 부딪히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하고, 일이 없을 때는 뭐하면 좋을까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세계를 잠깐 닫아 걸고 낯선 세상을 어슬렁댄다. “당신들의 나라에서 사라진 공동체와 특유의 인간적 여유”를 느끼며 독일도 가고 네팔도 간다. 

202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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