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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Nov 19. 2021

태동: 잘 있다는 인사

임신 중기로 접어들면서 13~14주쯤부터 태동이 있었다.


처음엔 뱃속에서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소화가 되는 거 같은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뱃속에서 가스가 이동하는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태동을 느끼고 싶어서 늘 배에 손을 얹고 있으면 가끔 '뽀그륵'하고 공깃방울이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아주 작은 반응이 있었다. 그러다가 자궁이 커지면서 아기가 골반에서 위쪽으로 이동하면서 오히려 태동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잠하다가 20주쯤 접어들었을까. 아주 작은 물고기가 '꼬물' 하는 것처럼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은 '부르르' 떨기도 했다. 배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 그 근처가 '꼬물' 거렸다. 나는 그걸 하이파이브라고 불렀다.


28주에 접어든 지금은 태동이 커다란 잉어가 뱃속에서 헤엄치는 정도로 바뀌었다. 배 모양이 찌그러질 정도로 크게 이동할 때도 있는데 아기가 앞구르기를 하는 중인가 싶을 정도로 머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게 만져지기도 했다. 이렇게 태동이 심해지기 전까지 태동을 나만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나 다른 사람의 손이 배를 만지면 아기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살피는 듯했다. 그래서 남편은 늘 치사하다며 나오면 두고 보라고 자기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버티게 해 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러다가 남편이 처음 태동을 느낀 것은 아기가 딸꾹질을 할 때였다. 딸꾹질은 10분 정도 계속됐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듯한 정기적인 툭툭 거림이 유지됐다. 이건 아빠의 손이 와도 아기도 어쩔 수 없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정체가 드러나버렸다. 겨우 딸꾹질인데도 신기하다며 배에 한참을 손을 얹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걱정됐는지 '이렇게 딸꾹질을 오래 해도 되는 거야? 우리 아기 힘든 거 아니야?' 걱정 어린 눈빛으로 이제 딸꾹질 그만하자 하고 타이르면 조금 더 툭툭 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태동이 가장 심할 때는 아침에 일어날 즈음과 퇴근해서 막 씻고 누웠을 때다. 일도 해야 하고 운전도 해야 하는 엄마를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거나 집중하고 있을 때 못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잠잠하다. 그래서 나는 엄마 일하라고 엄마를 배려해주는 아기가 벌써부터 효녀라며 자본주의를 안다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아기가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기특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일하는 엄마라 미안하기도 해서 화장실에 앉아서 배를 쓰다듬으면서 "움직여도 돼! 엄마는 괜찮아!"하고 이야기해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또 하이파이브를 딱! '꿈틀'하면서 엄마 손에 툭 하고 신호를 준다. 가끔 일이 많아서 컴퓨터 앞에 오래 꽂꽂이 앉아서 일을 할 때면 힘들다고 신호를 줄 때도 있다. 그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툭' 하고 발로 차는데 그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리를 올리고 쉬었다. 그럼 좀 편안해지는지 툭툭 거리던 게 잦아들고 이내 꼬물꼬물 하다 태동이 잦아들었다. 그러면 또 기특해서 "우리 아기 뱃속에서부터 의사표현이 확실하네! 또 힘들면 엄마한테 신호를 줘!" 하며 혼자 씩 웃곤 했다.


임신하기 전에는 태동이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감이 안 왔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꿈틀거리는 게 이상하진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임신한 엄마들이 '태동할 때가 제일 행복해' 할 때도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는데, 뱃속에서 아기가 태동하는 것은 엄마한테 잘 있다고 나는 건강하게 잘 있다는 신호 같아서 툭툭 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반갑고 귀엽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때마다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임산부만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또 벅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또 배 속에 아기가 보내는 신호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면서 교감한다. 툭툭 거리는 작은 움직임에도 일일이 대꾸를 해주면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배를 움켜쥐며 "뱃속에서부터 이렇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거야!" 하며 아기에게 투정도 해본다.


너무 예쁘고 신기하고 기특한 인사다. 배 속에 아기가 나를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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