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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Dec 03. 2021

남편을 사랑하는 게 최고의 태교가 아닐까

임신을 하고 정말 많은 축복과 관심 그리고 배려 속에서 살고 있다. 아마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히 남편이다. 임신 전과 임신 후가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조금 더 과보호 모드에 들어갔달까. '임신 전에도 무거운 거 들지 마라. 조심해라. 밥 먹어라.' 잔소리꾼이었지만 임신 후에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퇴근길에 통화하면 늘 집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누워서 쉬고 있으라고 말해준다. 설거지가 산처럼 쌓여있어도 자기가 다 하겠다면서 집안일은 손도 대지 말라고 말한다. 그 마음이 그 말 한마디가 참 고맙다. 그렇다고 남편이 가정적이고 집안일도 잘하고 알아서 챙기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결혼 전에는 자기 손에 물 한 번 묻힌 적 없는 청소기 한번 세탁기 한번 돌린 적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시댁에 가면 소파에 누워서 밥 먹을 때 빼고는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무엇이라도 하려고 하고, 부탁하면 늘 들어준다. 서툴고 큰 손으로 매일 밤 퇴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어쩐지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사람의 이런 노력과 변화가 참 고맙다. 그래서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지켜주고 싶다.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섭섭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이 사람이 나에게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섭섭함은 찰나로 스쳐 지나간다. 나도 그런 것을 참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섭섭하거나 함께하고 싶을 때마다 늘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그런 것도 이해 못 해?'란 태도가 아니라, '내가 몰라서 그랬어. 앞으로 고칠게. 내가 혹시 또 그러면 꼭 말해줘.'라고 이야기해준다. 아낌없이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그런 수용적 태도가 늘 나를 말랑말랑하고 둥글둥글하게 만들어버린다. 공격할 일이 없어서 촉수가 사라져 버린 팔라우의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해져 버리고 만다.


남편에게 태담을 해달라고 협박을 했다. "아빠 목소리 몰라서 아빠 왕따 시킬지도 몰라 아기가!" 그랬더니 어색하지만 배에다가 대고 조곤조곤 말한다. "엄마가 아빠 협박하는 거 봤지? 엄마가 그런다니까!" 그러곤 어색한지 이내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나야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아라도 한 몸안에 있으니 말을 걸고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볼록한 배에다 대고 이러쿵 저렇쿵 말하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하다가 아빠 태담은 포기했다.  대신 그냥 내가 남편과 많이 대화하고 전화도 많이 해서 아빠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는 걸로 태담은 대신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 볼에다 뽀뽀 한번 하고 "이건 아빠 빵빵한 볼이야."라고 말해주고 남편을 꼭 끌어안으면서 "세계 최고 듬직한 아빠야."하고 남편 머리 쓰담 쓰담하면서 "할머니가 아빠한테 천연 곱슬머리 물려주신 거야."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면 또 남편도 한 마디씩 덧붙여서 아기에게 이야기할 거리가 늘어난다. "머리숱은 엄마 닮고, 머리 결은 아빠 닮아라. 시력은 아빠 닮고, 눈은 엄마 닮아라." 차근차근 아기에게 말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남편 퇴근하길 기다리다 졸고 있으면 조용히 살금살금 들어와서 설거지와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과일을 먹다가 소파에 두고 잠들어 버리면 조용히 들고 가서 치워주곤 한다. 그냥 그런 모습이 안쓰럽긴 하지만 사랑스럽다. 늘 더 잘해주고 싶은데 늘 남편이 더 잘해주는 듯하다. 그냥 열심히 사랑하면서 아껴주는 거 말고는 해 줄 게 없다. "엄마가 지금은 아빠를 가장 사랑하는데, 우리 아가도 아빠만큼 사랑해." 배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해준다. 그냥 이 마음으로 아기를 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감수하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태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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